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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행] "마전교에서 세운교까지 봄을 걷는다" - 청계천을 걷자 20150421

스타(star) 2015. 5. 2. 02:39

출퇴근길 마전교

​종로5가에서 내리면 마전교를 따라서 을지로로 건너온다. 자주 애용하는 길인만큼 오늘 산책은 이곳에서 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청계천에는 엄청 많은 다리들이 있는데, 나는 그 중에서도 마전교를 제일 많이 지나친 것 같다.




여름의 시작

​봄이 가고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꽃이 피고 지는 수준을 넘어서 나무들은 이미 초록 잎을 잔뜩 펼쳐놓고 있었다. 한적한 청계천의 천변을 따라서 이름모를 풀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세운상가의 추억들

어린 시절에 용산보다도 세운상가를 먼저 다니곤 했다. 한창 백업시디를 사서 그 안에 들어있는 게임들을 잔뜩 플레이 하기도 했다. 그 때 만원 한장을 꼬깃꼬깃 쥐고 가서 게임 시디라도 사오면 뭔가 큰 일을 저지른 것 처럼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잽싸게 돌아오곤 했다. 시디롬을 먼저 다 돌려본 뒤에 다음날 학교가서 친구들에게 돌리는 일은 내 차지였다. 

한반에 컴퓨터 가진 친구들이 단 두명이었던 시절부터 컴퓨터를 배웠다. 이듬해부터 집집마다 컴퓨터 하나씩 들여놓기 시작했다. 나랑 친해지면 가장 빨리 게임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친구들도 많았다. 옆 반에서도 찾아오고, 더 멀리에서도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친구들이 많았다. 게임과 야동을 독점 공급하면서 일진들 조차도 나와 친해지고 싶어했다. 그 해, 교내 컴퓨터 경시대회를 우승하고 나자 나는 전교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누가 봐도 당시에는 "컴퓨터 천재"였다.



시간이 흘러 세운상가는 점점 규모가 줄었다. 컴퓨터는 대중화 되어 갔고,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컴퓨터관련 제품과 기술은 대부분 용산 전자상가로 떠났다. 이제 게임들은 인터넷으로 다운 받는 시대가 되었다. 나만 잘하는 줄 알았던 컴퓨터를 이제는 모두가 다룬다. 나의 세운상가는 이제 유하의 시처럼 추억속에 남아있다. 명멸해가는 추억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서 글을 쓴다. 모든 것을 놓치기 싫은 기록자의 삶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1  

  

                                유 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지독한 마음의 열병, 

나 그때 한여름날의 승냥이처럼 우우거렸네 

욕정이 없었다면 생도 없었으리 

수음 아니면 절망이겠지, 학교를 저주하며 

모든 금지된 것들을 열망하며, 나 이곳을 서성였다네 


흠집 많은 중고 제품들의 거리에서 

한없이 위안받았네 나 이미, 그때 

돌이킬 수 없이 목이 쉰 야외 전축이었기에 

올리비아 하세와 진추하, 그 여름의 킬러 또는 별빛 

포르노의 여왕 세카, 그리고 비틀즈 해적판을 찾아서 

비틀거리며 그 등록 거부한 세상을 찾아서 

내 가슴엔 온통 해적들만이 들끓었네 

해적들의 애꾸눈이 내가 보이지 않는 길의 노래를 가르쳐 주었네 


교과서 갈피에 숨겨논 빨간책, 육체의 악마와 

사랑에 빠졌지, 각종 공인된 진리는 발가벗은 나신 

그 캄캄한 허무의 블랙홀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나 모든 선의 경전이 끝나는 곳에서 악마처럼 

착해지고 싶었네, 내가 할 수 있는 짓이란 고작 

이 세계의 좁은 지하실 속에서 안간힘으로 죽음을 유회하는 것, 

내일을 향한 설렘이여, 우우 

무덤은 너를 군것질하며 줄기차게 삶을 기다리네 


내 청춘의 레지스탕스, 자상 위의 난 

햇살에 의해 남김없이 저격되었지 

세상의 열병이 내 몸 속에 들어와 불을 밝혔네 

금지된 生의 집어등이여, 지하의 모든 나를 불러내다오 

나는 사유의 야바위꾼, 구멍난 영혼, 흠집 가득한 기억의 육체들을 

별빛의 찬란함으로 팔아먹는다네 

내 마음의 지하상가는 여전히 승냥이 울음으로 붐비고 

나 끝끝내 목이 쉰 야외 전축처럼 

해적을 노래부르고 해적의 애꾸눈으로 사랑하리



위치

마전교에서 세운교까지 걷는다. 


청계천 마전교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5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