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오늘의 항해일지

술자리

스타(star) 2016. 9. 7. 02:16

돌고 돌아

바카디 한병 주세요. 1년을 돌고 돌아 그 자리에 앉았다. 술을 시켰다. 작년과 달라진 것이 뭐지. 계절이 조금 달라졌을 뿐. 결국 이 순간이 다신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혼자 술을 먹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가 되었네. 사랑은 나에게 너무나도 어렵다. 깨달은 것이 있었지만 늦었다. 차라리 그 원인을 몰랐다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알고나니 그래도 속이 시원해졌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게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으니까.

나 자신을 되돌아 본다는 것은 그래서 더 괴로울 수 밖에 없었다. 이별은 나에게 사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무리 서로에게 축복하고 그래 너나 나나 이게 서로 잘된거야 라고 몇 번을 이야기 해도 그렇다. 세상에 함께 있어도, 옆에 서 있어도 있는척 하지 않고 살아야 하니까. 그래서 더 괴롭다. 죽으면 추억할수라도 있지. 살아있는것은 눈앞에서 멀쩡히 다니는데 모른척 한다고 산다니. 

오늘만큼은 미친듯한 외로움이 몰려들기 전에 술을 마셔야지. 누군가에게 피해는 주고 싶지 않아. 무너지더라도 혼자 무너지는편이 낫지.

그냥 음악을 듣는다. 음악과 함께 술을 마신다. 혼자 마신다. 여기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왜 나는 이렇게 외로운 것일까.




나의 고민

너는 참 좋겠다. 상담해주고 어려울 때 도와주는 친구들이 많아서. 나는 정작 어려울 때 도움 받기가 참 어려웠다. 내 스스로의 이미지 때문인지 몰라도. 대부분은 내가 상담좀 해줘. 고민이 있어라고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믿지를 않았다. 그 흔한 연애고민조차 들어줄 친구조차 없었다. 너는 알아서 니가 잘하잖아. 너는 자신있어 하잖아. 친구들 앞에서 내가 앓는 소리를 하면 오히려 자기가 더 힘들다고 죽는 소리를 했다. 

야 나 아무래도 얘랑 헤어질거 같은데 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생각보다 더 복잡한 문제였지만 지나치게 쉽게 생각하곤 했다. 물론 내가 더욱 적극적으로 이야기 못해준 것도 영향이 있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상담자와 피상담자가 반대의 입장이 되는 일은 내 친구들에게도 다들 생소한 일이었다. 나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방법을 몰랐다. 이런 적이 없었고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웃고 떠들던 하루가 끝났다. 오늘도 결국 연극을 마친 기분이다. 커튼이 내려왔다. 이제 본래의 나를 만나야 할 시간이 된다. 하아. 지독한 외로움이 저기 서서 기다리고 있네. 혼자 고민하고 혼자 어떻게 해보려다가 결국 혼자가 되었다. 이제는 이 외로움이라는 녀석과 어떻게 싸워야 할지 자신도 안생긴다. 

괜히 쓸데 없이 잘사는척도 이제 그만해야지. 그럴수록 돌아오는 건 더 공허함과 더 큰 외로움, 그리고 더 큰 상처 뿐이니까.  

이젠 진짜 사랑 따윈 하지 말자 하면서 열심이 밀어내지만 결국 또 마지막엔 이렇게 끝난다. 지금껏 만난 모든 여자들에게 마지막 내가 했던 말은 항상 같았다. 그래서 니가 날 만난 이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졌다면 난 그거로 족해. 대충 어디 길가는데 사람많은곳에 두고 가. 그럼 누군가 또 고쳐서 쓰던가 주워가겠지.


취해도

취해도 역사조차 기록되지 않을 거야. 가좌동 어디 쯤에서 술에 취해서 길에서 누워 있다가 돌아와도, 성산동 어귀에서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와도 내가 오늘 이렇게 힘들어 하며 하루를 보냈다는 것은 나 밖에 모를 뿐이다. 가끔은 내가 너무 가여워서 왜 이렇게 힘들게 사냐고 스스로에게 반문한 적도 있다. 내가 남자니까. 내가 더 힘들어도 되니까.

친한 동생에게 문자가 왔다. 형 너무 잘사는거 같아. 요새 사람 많이 만나네. 그래보이냐? 그래 보이면 다행이네. 근데, 그런데 말이야. 넌 내가 왜 그러고 다니는지 정말 알고나 그러는 거야? 



성신여대입구 어디쯤

쿨한 사람은 없데. 쿨한척 하는거지. 그 말이 너무 뇌리에 박힌다. 대학교 때 만난 그녀가 헤어지기 이틀전에 지하철에서 이렇게 이야기 해주고 떠났다. 나는 그 말에 너무 깊게 베이고 말았다. 해석하자면 참 오묘했다.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그렇다고 너무 멀어지기에도 애매한. 그녀에게 만나면 해주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는데, 몇 번이고 연습하고 연습했다. 절대 붙잡지 않겠다고. 

정작 그렇게 이야기 해놓고 그 여자는 뉴질랜드로 사라졌다. 그녀의 말대로 나는 이렇게 쿨 해졌는데. 정작 자기가 쿨 하지 않았지.

"너를 놓친 것에 대해 내가 계속 고통속에 후회하면서 살기를 정말 바라는 거라면 그렇게 해. 니가 원하는 세상속에 살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되니까. 나 잘 이겨 내보도록 할게. 그런데 정말 나는 너의 행복에 한조각도 피해끼치고 싶지 않아. 그렇게 누군가를 미워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고 그게 너의 성장동력이라면 해도 되. 난 어떻게든 어떤 형태로든 너를 도울거야. 내가 너에게 그런 존재로 남아야 한다면 그렇게라도 할거야. 내 불행이 너의 행복이 된다면 그것도 좋아. 정말로 그렇게 여기고 살아가는 여자도 있으니까." 그녀는 쿨 하게 그래.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녀의 전화번호부에서 나는 없는 사람이 되었지. 그리고 십년이 넘도록 절대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지. 참 다행이다.

"정말 그런 생각 가지고 살아갈 거라면 나중에라도 우연히라도 날 마주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당신이 마지막에 봤던 그 모습이 내 평상시 모습은 아니니까. 당신이 반했던 모습, 뭔가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 했던 모습, 당신의 부족함을 메꾸려고 했던 모습, 마지막까지 변하려고 했던 모습이 오히려 더 진짜 내 모습 이니까. 당신이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는데 내가 분노하고 화낼 이유는 털 끝 만큼도 없어. 하지만, 진실을 깨닫고 다시 나에게 달려와야 하겠다면 난 널 더 강하게 안아줄거야. 넌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 된 거니까. 하지만, 그 때의 너도 전력을 다해야 할거야."

쿨한 사람은없데. 쿨한척 하는 거 뿐이지. 쿨한 사람은없데. 쿨한척 하는 거 뿐이지. 쿨한 사람은없데. 쿨한척 하는 거 뿐이지. 그래서 난 그녀에게 연락을 하네. 오히려 그녀는 끝내 연락이 없네. 그래서 나는 쿨한 사람으로 남겨지네.

취하려 해도 취해지지가 않는다. 고독에 취한다. 마치 베르세르크의 가츠같다. 가츠는 밤이 되면 기어나오는 마물들과 싸우지만, 이제부터 나는 밤이 되면 기어나오는 외로움과 매일 싸우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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