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고교자퇴일기

내가 겪은 청소년 자퇴 문제에 대한 이야기와 교육의 다양성에 대해

스타(star) 2014. 11. 21. 03:03

오랜만에 청소년 이야기와 사회 복지에 대해 생각을 좀 해보려고 한다. 

우선, 17살에 고등학교 자퇴라는 큰 선택을 결정한 뒤로 내 인생은 남들과는 다소 독특한 길을 걷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울타리 밖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이 글 한번으로 그 재미있는 이유와 상황들을 전부 다 쓸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고 시간 날 때 하나씩 겪은 일들을 풀어보도록 하겠다. 

암튼, 대한민국에서의 학교를 다니지 않는 청소년의 삶이라는 것이 상당히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는데, 다음과 같은 일들을 되새겨 볼만하다. 



1. 당장은 현실

나는 당장 현실에 부딪혔던 것이 교통 요금이었다. 


학생증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에 성인 요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학생 할인을 요청하더라도 학생증 제시를 요구 받거나 교복을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부되기 일수였다. 


다행히 2001년도 부터 줄기차게 요구한 결과 청소년증 제도가 도입되는 결과를 낳긴 했지만, 여전히 학교 다니는 학생과 학교를 다니지 않는 학생을 나누는 기준이 되고 있는 점은 안타깝다. 


학교에서 자체적인 학생증을 만드는 것 말고, 만 9세부터 청소년증 발급을 의무화하는 제안도 해봤지만, 예산부족을 이유로 접혀있었다.


2. 교육의 다안성이 필요하다.

또 하나는 원하는 교육을 받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지금이야 인터넷 강의라는 것도 있고, EBS도 있고, 부족한 상황이나마 대안학교라는 것이 생기고 있지만, 그 당시엔 그냥 사설 검정고시 학원 정도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택지였다. 


국가에서 제공하는 공교육 시스템을 제외하면, 청소년이 필요에 따라 국가에서 제공 받을 수 있는 교육의 기회와 다양성이 매우 열악하다. 공교육 테두리 바깥으로 나간 학생들의 진로 설계라도 해주면 좋겠지만, 그런 것은 본적이 없었다. 


또한, 대부분 이러한 진로를 선택한 청소년들의 경우 단순히 학업 성취보다도, 뭔가 직업적인 선택에서 진로를 결정하고 싶은 경우가 많은데 그럴려면 기술을 가르쳐 주는 곳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실상 현행으로는 이들의 학원비를 절감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직장인의 경우에는 고용보험을 가입하고 그 비용으로 노동부에서 국비 지원으로 학원을 싸게 다닐 수 있다든가 하는 시스템이 있는데, 청소년들은 그런 제도에서 벗어나 있다. 


3. 입시의 불리함

입시에서는 검정고시 출신이 호불호가 갈린다. 많은 대학들이 내신이 없는 검정고시 출신들을 위해 상대평가를 실시하고 있는데, 이 상대 평가라는 것이 성적이 좋은 학생은 상위 등급의 내신을 얻게 되고, 성적이 안좋은 학생은 훨씬 나쁜 등급의 내신을 얻게 된다. 


근데 정말로, 이것이 대학에서 정하기 나름이다. 어떤 학교에서는 전공과 관련 있는 과목에 대해서만 상대평가를 하기도 하고, 어떤 학교에서는 모든 과목에 대해서 상대평가를 하기도 한다. 장점이자 단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한편, 검정고시 출신은 거의 90% 이상이 정시모집에 의존해야 하는데 수시모집의 전형에서 검정고시 출신들이 들어갈 공간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점점 다양화되고 전문성을 인정받는 사회에서 자기추천제로 학생을 받아주는 학교가 몇이나 될까.


4. 불안정한 사회망

대한민국의 사회망은 상당히 불안하다. 특히나 청소년들의 울타리는 상당히 불안해서, 공교육을 떠난 학생들은 탈선을 안하기가 더 어려울 정도였다. 아마도, 그 때 겪었던 사회적, 제도적인 부실함에 대한 아쉬움이 자라면서 점점 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벌써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문득 입시제도와 학생들을 바라보니 발전은 커녕 오히려 더 후퇴되어 있었다. 적어도 이해찬 1세대였던 우리는 한가지 잘하면 된다는 어른들 말씀에 맘편히 스타크래프트라도 즐겼다. 정말로 테란의 황제 이윤열이 자기추천제로 대학에 들어가는 모습을 내 눈으로 봤으니, 꼭 실패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청소년들이 무거운 입시위주의 사교육의 부담을 줄이고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건 대학가고 그담에 해라. 하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고 싶고 열정이 있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생긴 내 꿈, 학교

이런 글을 적어 놓고 나니 마음이 무거워 진다. 작년즈음 부터 소소하게 자원봉사든 자선단체든 뭔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어떤 것이라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떤 형태든 사회에 재능을 기부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게임을 만드는 직업을 가진뒤로, 나름의 미안함도 없지 않아 있다. 수출을 많이 해서 경제에 기여했네 이런 이야기도 왠지 와닿지 않는다. 경제성장을 위해 모든걸 바쳐 살아온 70년대 사고주의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40년이 지난 지금은 그 때보단 뭔가 달라야 하지 않을까. 


멍 때리지 말고 자기 앞가림 걱정해야 할 때라는걸 알지만, 그래도 내 자식이 살아갈 세상인데, 간과하고 내버려 두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되었다. 나에게 주어진 것만 하는 것은 그것 또한 하나의 직무유기라고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는 것은 누군가 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 때문인 것 같다. 청소년 및 청년들에게 도움이 되는 단체 및 기관을 설립해서 교육에 힘을 쓰고 싶었다. 대안교육은 아마도, 내 오랜 숙원 사업이자 사회의 건조함을 이겨내고 싶었던 하나의 저항이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