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썰.ssul

남녀는 친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ssul

스타(star) 2014. 9. 22. 05:30

몇 년 전에, 그러니까 되돌이켜보면 그게 벌써 대학 시절로 되돌아 가는구나. 


인턴을 하면서 알게된 친구가 있었다. 날씬하고 성격도 밝아서 호감형이더라. 


물론 어느정도 거리는 유지했었지. 나도 그 때는 여자친구가 있었고, 이 친구도 남자친구가 있었거든. 


그렇게 뭔가 굴레와 책임 때문에 그애를 좋아하는 감정을 숨기게 되었다. 그 때라도 솔직히 말하면 좋았을 걸.


음. 지금 생각해보면 친구라고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 때 내가 만나던 여자친구보다도 걔를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솔직히 현실을 자꾸 부정하려고 들었던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그녀에게 까일까봐 용기가 부족했던 것 같다. 자칫하면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었기에 신중해졌다. 


가끔씩은 종종 그 친구와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차도 한잔하곤 했다. 주로 연애상담을 해주곤 했는데 돌이켜보면 그게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었다.


"남자친구랑 싸웠는데"

"어제 또 싸웠는데"

"남자들은 원래 그래?"


이런 이야기들을 숱하게 들었다. 어쩌다 보니 몇 년을 계속 연락하고 알고 지내게 되었다. 


그녀가 남자친구와 싸우고 그녀가 힘들어 할 때마다 내가 그녀의 곁을 맴돌았다. 물론, 그렇다고 이 친구에게만 매달려 있던 건 아니었지. 


나도 물론 계속해서 연애를 하긴 했다. 그러던 중에 나는 삼년 가까이 만나던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되었고 한 동안 솔로 생활에 적응해나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얼마 뒤에 어느날, 그녀에게도 연락이 왔다. 그녀 역시 삼년 동안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아! 이제 나에게도 기회가 온 거라고 생각했다.


한 동안 힘들어 하는 그녀가 어느날 나에게 소개팅을 해달라고 연락이 왔다. 나는 도저히 내키지가 않았다. 

누구를 대신해서보다도 내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엔 내가 나가서 그 친구를 만났다. 

하지만, 태세전환 하고 보니 친구로써는 좋을지 몰라도, 그녀는 나를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무언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겠지.


난 결과적으로 남자로써는 어필을 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바보 같은 생각인데, 그 때는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그저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제일 날 가로막았던 장벽인 것 같았다. 그것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데 말이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막대하지 못했다. 마음이 약해서. 


사람은 모두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보다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약하게 되어있다. 


나는 나와 상관 없는 사람들에게는 강하게 굴었지만, 그녀에게만은 약했다. 


결국, 그녀는 새로운 남자친구이자 약혼자를 만나게 되었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운 시작의 순간을 지켜보게 되었다. 결혼으로 고민을 하는 동안, 종종 나를 찾아와서 으례 했던 것 처럼 상담을 늘어놓곤 했다. 


항상 따뜻한 모습, 편안한 모습, 이해해주는 마음만으로는 사랑이 생기지 않는다. 


그녀는 나를 만난 이후면, 어떤 막혀 있던 감정의 해소를 느꼈는지도 모른다. 만날 때마다 내 바램과는 달리 남자친구에게 더 빠져드는 모습을 보고 씁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 내가 해준 것이 부족했던 것인지. 아니면, 나의 유유부단함이 그렇게 만든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에게 나라는 존재는 남자친구와의 애정을 확인하기 위한 것에 불과했나 생각하면 씁쓸하기 그지 없다.


나는 결국 그녀의 결혼을 도운 셈이라는 사실이 괴로울 뿐이었다.


어느날, 청첩장이 날아왔다. 

친구가 면사포를 쓴 모습을 보면서 수 많은 감정이 뒤섞였다. 

하지만, 피하고 싶지 않았다. 

당당히 그 친구를 마주보고 내가 널 생각한 마음 역시 작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결국 그 친구의 결혼식을 웃으면서 참석함으로써, 내 사랑도 크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그러면서 내 마음에 기스가 나길 바랬던 것도 있었다. 그래야 이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 더 큰 아픔을 겪지 않기 위해서 내가 노력할 테니까.


호텔 결혼식을 한 몇몇 커플 중에 그녀는 당연 돋보였다. 경조금도 다른 결혼식보다 더 많이 넣었다. 


친구와 마지막 작별인사는 짧았다. 그녀는 이제 곧 남편이 될 사람과 함께 나를 보며 살짝 놀란 눈치였지만, 작게 내 이름을 불러주고 눈인사를 했다. 짧았지만 몇 분은 흐른 것 같았고 여러감정이 섞인 인사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녀는 곧 다른 테이블로 갔다. 나는 음식을 다 먹고 디저트까지 다 챙겨 먹은 뒤에 뒤돌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몇 일을 멍하게 보냈다. 


찌질하다고 할 수 있지. 당연히 나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말이야. 누구나 완벽한 법은 없을 테니까.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도 뭔가 얻어낼 수 있지 않을까? 

가급적 그렇게 생각하려고 애썼다. 나아지려면 배워야하니까. 


그 때였던 것 같다. 다시는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놓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고민은 하되,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쟁취해나가겠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겠다. 실패한다 쳐도.


다들 이 사진을 보면 평범한 웨딩 사진으로 보이겠지만, 나에게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사진이다. 

누군가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 망설여질 때면 이 사진을 한번씩 본다. 

이 거지 같은 기분을 또 느끼고 싶지 않으려면, 나도 전력을 다해서 사랑해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그녀와 닿지 못했지만, 서로 많은 것을 알려주고 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