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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꿈,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 - 계속 쓰여지는 자서전

스타(star) 2013. 5. 2. 02:17

기억과 꿈.



유치원

어렸을 때 내 꿈은 무엇이었는가 되돌아 보면 경찰이었다. 아마도, 그 당시에는 경찰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고로 멋있는 직업이었나보다. 그 때는 참 많이 이사를 다녔던 걸로 기억한다. 의정부에서도 두 세번은 이사를 다녔던 것 같고, 미아삼거리에서도 살았던 것 같다. 

나야 잘 모르지만, 80년대의 서울은 살기 참 팍팍 했던 곳이었던 곳 같다. 어머니께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미술학원에 유치원으로 보냈다. 그런데 참으로 궁금한 것이 미술학원에서 유치원을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내 그림 실력은 지금도 정말 형편이 없었다.


초등학교





나는 초등학교때 운명적으로 컴퓨터를 접하게 된다. 당시 어머니의 회고로는 컴퓨터 학원과 피아노 학원 중에서 고민을 하셨다고 한다. 컴퓨터 전문가가 될지 작곡가가 될지 결정되는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는 집에 피아노를 살지, 컴퓨터를 사야할지 고민했던 것 같다. 당시에는 피아노나 컴퓨터나 가격은 비슷비슷했었다. 어쨌든 낮에 한가롭게 집에서 멍때리고 TV나 보는 것 보다는 컴퓨터 학원에 가서 뭐라도 배우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그렇게 수유리에 있는 왕월드 컴퓨터학원에서 나는 처음으로 컴퓨터를 접했다. 한메타자를 배우고, 로터스1-2-3를 배웠다. 학원 선생님은 키가 작은 선생님이었는데, 비교적 내가 빠르게 컴퓨터를 익힐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것 같다. 컴퓨터를 배우면서 어렸을 때, 서점에 자주 갔다. 컴퓨터 기초 서적을 여러권이나 샀다. 참 이해 되지 않는 부분이었는데 만약 그 때 조금 더 좋은 멘토가 있었으면 심화과정으로 넘어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그 때는 컴퓨터를 활용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에 속했다. 컴퓨터 참 쉽네요. 전우성만큼 한다 등등의 컴퓨터 입문 서적을 여러권을 사서 익혔다. 그러다가 컴퓨터 잡지도 보게되었고, 그 곳에서 우연히도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다. 당시로써는 매우 희소한 직업이지만, 미래는 밝다고 했었던 것 같다. 왠지 이름만 들어도 설레이는 그런 직업이었다. 나는 그림은 자신이 없었지만, 컴퓨터는 자신 있었으므로, 나이가 들면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첫 번째 첫사랑


중학교

컴퓨터 전문가, 웹마스터 등으로 보다 컴퓨터를 활용한 직업을 추구하게 되었다.





두 번째 첫사랑





고등학교


그 후로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사회전선에 뛰어들면서, 내가 믿던 것들에 대한 좌절을 겪게 된다. 


고등학교 자퇴

이 사회는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정말 중요한 것은 기술뿐만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시절에 내 꿈은 사업가, 비지니스 관련 업무를 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되었다. 부자가 되고 싶었다. 열일곱살의 나는 자본이라는 것에 주는 공포를 몸서리치게 겪은 것이다. 



검정고시

적어도 손해보지 않으려면 많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오랜 기간이 필요했다. 뭐든 완벽하게 끝내기 보다는 폭넓게 알려고 하는 성격 덕분에 이미 한번 손에서 놨던 공부는 나에게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인생 공부였고, 자신과의 싸움의 연속이었다. 4년의 입시 생활 동안 내 꿈은 대학생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감고도 가는 대학을 나는 천신만고 끝에 입학을 할 수 있었다. 아침에는 쇼핑몰 장사도 하고, 자퇴에서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에 가는 길에 수 많은 불편함과 싸워 왔다.



입시


재수


삼수


사수

가히 비포장도로에 아스팔트를 깔면서 걸어왔다고 해도 될 정도로 어려운 기억들이었다. 어렵게 입학한 학교는 다니는 것도 어려웠다. 하지만, 대학생활은 내 고향이자, 내 꿈과 같은 것들이었다. 나는 울타리를 가져보았고, 더 넓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또한, 스스로 학습해야 하는 대학 공부는 내 체질에 맞았다. 자신감이 넘쳤고, 사랑도 겪었다. 내 인생의 낭만주의가 흐르던 시절이었다. 학기 내내 나는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곤 했다. 지독하게 가난했지만, 즐거웠다. 어려운 경제 상황은 생활 전선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세 번째 첫사랑



대학교

2006년 여름. 나에게는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었다. 국토대장정과 출근이라는 선택지에서 나는 어렵게 출근을 선택했다. 그 후로 직장인으로써 세개의 프로젝트와 군인으로써 산업기능요원, 학생으로써 독학사를 거쳐 방통대 편입에 이르기까지. 이것들이 내 지난 십 여년이었고, 이십대였고, 내 자취와 기록들이다. 이제 하나둘 씩 이 공간을 빌어서 이야기들을 써내려 가보려고 한다.


게임 기획자


첫 번째 회사


두 번째 회사


세 번째 회사


산업기능요원


네 번째 회사


서른살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보자면, 나는 모르는 것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에 대해 굉장히 즐거워했던 것 같다. 정말, 나는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조차 궁금할 때가 많다. 그것 조차 알아가는 것에 대해 즐거워 하는 것이 아닐까. 매우 급하게, 서두르면서 학습하려고 했다. 왜냐면 세상의 많은 것들이 궁금했으니까. 


하지만, 공부를 할 수록 학자나 연구원 타입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현장에서 쓸모가 없는 지식에는 흥미나 관심이 적은 것 같다. 또한, 여태까지도 잘 안되는 것이 프로그래밍이나 수학이다. 뭔가 답이 하나만 나오거나 정해져 있는 것은 내 스타일에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다양성을 즐기고, 인간의 본성과 심리에 대해서도 궁금함이 많았다.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참 어렵고도 복잡하다라고 느꼈다.


응용기술. 기술간의 결합, 또는 미래학등에 호기심이 많은 것 같다. 한 때 동양철학을 공부하면서, 유교에서 안정된 소셜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감명받았으며, 답답한 미래를 알고 싶어서 사주학을 공부하려고도 했다. 인생자체가 스토리텔링이라서 그런지 유전적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글 쓰는 쪽에도 흥미가 있다. 하지만,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므로 절필도 겪었다. 2011년에 정보통계학과에 편입하게 되는데, 굉장히 내 스타일에 맞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기술과 인문의 결합, 그리고 미래예측까지. 내가 가진 변수들을 조작해 내가 원하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얻는다. 아마도, 이 세상을 프로그래밍하고 싶은 것이 내 마음이 아니었을까. 


여전히 나는 여행중이다. 내 인생은 어디로 갈지 모른다. 나는 세상에 없던 가치나 몰랐거나 놓치던 사실들을 찾는 모험가이자, 예술가이다. 지금 내 인생의 목표는, 제일 중요한 것은 지금 이렇게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하면서 사는 것이다. 그것도 멋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