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는 눈먼 물고기처럼 인천을 빠져나와 서울의 북쪽으로 달려갔다. 나는 열차 안의 노선도를 올려다보며, 역사의 수를 꼽아 보았다. 인천에서 의정부까지 50여 개의 역이 있고, 영등포에서 신길, 종로를 지나면 서울 북쪽 어딘가에 내 방이 있다.
자동문 위, 노선표의 불빛이 깜빡거렸다. 자그마한 플라스틱 전구 위로, 종착역가지는 녹색불이, 이미 지나간 역 위로는 빨간불이 켜지는 노선표였다. 낯선 지명의 점들과 그 사이를 잇는 직선. 나는 그것이 카시오페이아나 페르세우스, 안드로메다라 불리는 이국말로 된 성좌의 이름처럼 어렵고 낯설었다.
내가 모르는 도시의 별자리. 서울의 손금. 서울에 온 지 7년이 다 돼가는데, 그중에는 내가 아직 한번도 가보지 못한 동네가 많다. 지하에서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안내방송을 들을 때마다 나는 구파발에도, 수색에도 한번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것은 서울이 너무 넓은 탓이 아니라, 내 삶의 영역이 너무 좁았던 탓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별자리에 깃든 이야기처럼, 그 이름처럼, 내 좁은 동선 안에도ㅡ나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 베타별이 자오선을 지나갈 때, 내게
베타별이 자오선을 지나갈 때, 내게
내가 문예창작을 전공 해서 느낀 가장 좋은 점 중에 하나는 글쟁이가 되었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좋은 독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오래된 하드디스크를 뒤지다 보면 습작소설이나 시, 급하게 적어둔 스케치나 필사본들과 같은 언어의 파편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책장과 컴퓨터에 이런 것들이 들어 있다는 것은 너무 즐거운 것 같다. 오늘은 이 소설을 다시 읽었다.
내 스무살은, 노량진에 있었다. 그 때는 그냥 열심히 살면 될거야. 힘을 내자. 화이팅. 하면서도 무언가 가슴 한편에는 찜찜함이 남아 있었다. 당시에는 그게 뭔지 모르겠더라. 이 소설은 내 청춘의 기억이자, 스크래치를 그대로 묘사해 두고 있다. 오랜 기억과 습관들을 어떻게 추억해야 하는지도 모르던 시절에 김애란이 나 대신 잘 짜맞춰 준 것 같아서 고마웠다.
날카로운 묘사
소설 속의 주인공은 겨우 학원 강사 자리를 알아보고 있을 때쯤이겠지. 내가 대학 졸업할 만한 시절에 갑자기 힐링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기 시작하더라. 단군이래 최저학력이니, 88만원 세대이니. 이해찬 1세대이니.
온갖 수식어로 애들 자신감이니 자존감이니 깡그리 밟아놓고 보니까 이제와서 힐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회분위기가 되었다. 그 사이에 바늘 구멍 같은 희망을 만들어 놓고 그 틈을 위해 달리라고 고문할 뿐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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