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오늘의 항해일지

비오는 강남 거리

스타(star) 2015. 6. 21. 03:38

1. 

비 오는날이면 광화문에 가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강남에 와 있었다. 나쁘지 않았다. 바람도 선선하고, 시원하고, 요즘 이어지는 가뭄 때문인지 몰라도 갈증이 올라오고 있었는데, 더 늦기 전이라도 비가 와주어서 다행이다.

L과 함께 강남을 거닐고, 영화를 보고 점심과 저녁을 먹었다. 이렇게 돌아다녀 본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2.

A를 만나보니 생각했던 만큼은 걱정할 필요가 없겠더라. 사실, 그것보다 고민해야 할 과정이 10배는 더 많을 텐데 이미 한차례 겪은 홍역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한창 놀러다닐 그시절 이야기가 나왔다. 꽤 오랜 별명도 오랜만에 들어보니 나쁘지 않았다. 이제 이렇게 하나둘씩 가는건가 싶어졌다. 




3.

희안하게도, 주변의 남자들만 보면 전부다 양아치 같고 꼴 보기가 싫었다. 정말 회사 남자 직원이랑 밥이라도 먹었다고 하면 이상하게 그날 하루는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속이 안좋았다. 그 덕분인지 몰라도, 친구네 커플의 100일 파티에 들러리를 가겠다는 것을 가지고 죽자고 싸웠던 것 같다. 내 여자친구가 그런 사소한 일에 동원되는 것이 너무 싫었다. 친구니까 뭐 어때라고 하지만 솔직한 내 속내는 조금 달랐다. 히죽거리는 그 자식을 한번 더 마주치게 된다는 것은 더 보기 싫었고, 그 자식을 도와주는 일이라면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아는 모든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려서 이 문제에 대해서 공개 토론을 하기도 했다. 가야하네, 말아야 하네 의견이 엇갈렸다. 한쪽은 별거도 아닌거 가지고 남자가 유난 떤다는 것이었고, 한쪽은 남자가 그렇게 싫어하는 짓이면 여자도 가지 말아야 하는것 아니냐는 의견이었다. 

사태가 이지경까지 오자 결국에는 그녀가 안가겠다고 선언했다. 처음이었다. 그렇게 사람 고집을 꺾어놨다는 자책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말을 따라주었다는 것에 정말 고마워서 미친듯이 잘해주었다. 그리고 그 일을 잊었다.

몇 년 뒤에, 무척이나 힘들어하던 나에게 한 친구가 결국 그 얘기를 꺼냈다. 

걔? 결국 너 몰래 거기 갔어. 병신아. 



4.

이 질투심을 어찌해야할까. 이게 내 인생의 원동력이고, 나아가게 하는 힘인 것은 사실이지만, 자칫 과하게 작용하다보니 부작용도 큰 것 같다. 나도 능숙한 사용법을 잘 모르겠다. 마음의 근원을 파고들어 보면 정말 끝도 모를 애정의 결핍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들기도 하고, 뭐든 한번 얻은 것을 너무 쉽게 뺏기고 양보했던 기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 내 모든 것이 다 부족함에 시달렸기 때문에 그렇다. 깊이 파고들고 파고들어가다 보면, 밤새 나도 그 의문에 끝을 보지 못하고, 지쳐 쓰려져 잠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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