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오늘의 항해일지

페이스북 탈퇴기. 난 싸이월드가 그립다.

스타(star) 2014. 9. 24. 02:47

오랜만에 싸이월드에 들어가 보았다. 

많은 시간을 들였던 내 생에 최초의 SNS아니었던가. 

우리는 정말 미친듯이 싸이질을 해댔다. 20대 초 한창 세상에 뭔가 특별한 존재이고 싶었던 우리는 각자의 개성을 담기에 바빴다. 대문 문구 하나, 사집첩의 폴더명 하나가 모두 개성이었다. 


종종 어쩌다 마음에 드는 여자애 싸이라도 찾아서 들어가면 사진은 일촌에게만, 이라는 문구를 보고 허탈해하기도 했다. 그녀의 방명록을 이잡듯이 뒤져서 뒷조사를 하던 때도 있었지. 미친듯이 파도타면서 추적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 때는 그 사람의 흔적들을 관음병처럼. 스토킹처럼 뒤적거리는 재미가 있었다. 그 사람의 미로같은 힌트와 퍼즐을 풀어가면서 당신을 이해하게 되었고, 빠져들 수 있었다. 


오랜만에 들어간 싸이에서 더 이상 친구들의 근황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홈피는 대부분 문을 닫았다. 마치 그리스 유적지처럼 쓸쓸히 방치되어 있었다. 




페이스북과 거짓

이젠 누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면 페이스북으로 들어가서 살펴보면 된다. 하지만, 이상하다. 온통 건조한 이야기가 넘쳐난다. 


이상하게 나는 그렇게 행복하지 않은 것 같은데 페이스북의 내 모습을 보면 너무나도 행복해보이고 잘나가는 것 같다. 언제부터인지 남에게 보여지는 일상에 대해서만 생각하다보니 내 현실을 잊게 되더라.


아무래도 사람들은 내가 잘 모르는 누군가에게도 의견이 전달된다는 것을 알게되면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게 되지 않나? 정작, 나의 진심보다도 남에게 보여지는 모습에 더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솔직함을 담아내질 못한다. 시선 때문에, 그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보일까봐 자꾸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오히려 자신의 개성을 죽이게 되고 부자연스러운 모습만 만들었던 것 같다.


이제는 페이스북을 탈퇴한지 한달 정도 되었는데 일상 생활 하는데 이제 전혀 지장이 없어졌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 느낌이, 금연할 때와 증상이 비슷하다. 

처음에는 금단현상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음식을 먹을 때도, 야구장에 갔을 때도, 여행을 갔을 때도. 아 지금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위치 로그 남겨야 하는데? 이런 생각들을 제외하고 보게 되었다. 그제서야 다른 세상이 보이기 시작하더라.

남에게 보여주는 일상이 아닌, 내 앞에 놓여있는 일상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사진찍어서 내 근황을 알려야하는 상황마다 몸이 근질거렸다. 내 사생활을 어떻게든 알리고 싶었다. 점점 SNS와 멀어지자 이제는 오히려 정제된 내 생각을 에세이처럼 적는 것이 익숙해졌다. 조금 더 생각해보고 글을 적게 되었다.


다시, 싸이월드

곰곰히 생각해보니 싸이월드에서는 나의 공간이 더 넓었던 것 같다. 내 기쁨과 슬픔을 솔직하게 전달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홈피에 들어오기 전에는 다른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소식이든 전해지지도 않았고, 적어도 내 홈피에 찾아올 정도라면 나에게 일말의 관심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니까. 


어렵고 어렵게 꼬아놓고 애매하게 전달 할 수록, 그 흔적을 찾을오는 사람들과 가까워 지는 기분마저 들었던 것 같다. 나 스스로 기쁜일 슬픈일을 마음대로 적으면서 오히려 독자들 신경 안쓰고 힐링 타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제 싸이월드에는 20살 때의 내 친구들이 있을 뿐이다.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 인터넷에서 모바일로 기술은 분명 더 진화하고 있는것 같은데, 어째서 친구들은 점점 더 사라지는 것일까. 



페이스북에 올리지 않은 청계천

아래는 밤에 걸으면서 찍었던 청계천 사진이다. 사실 예전 같았으면 이 사진을 올려두고 좋아요 몇개 클릭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중2병 걸린 것 처럼 뭔가 의미심장한 문구들을 적어두었겠지.


이날은 어쩐 일이었는지 청계천을 걷고 있었다. 이상하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떤 이유로 여길 걷고 있었는지. 그냥 굉장히 고독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난다. 


찍은지 한달도 넘은 사진인데, 이제는 그냥 여유롭게 이렇게 포스팅하곤 한다. 당시에 떠올랐던 인스턴트한 내 생각이 아니라, 수 일이 지난 뒤에 떠오르는 심상들을 적어보니 부유하던 감정들은 가라앉았다.

화려한 도시. 조명, 도심 속의 산책로. 그 속에 뭔가 동떨어진 내 모습. 그리고 여길 같이 걸었던 사람들과의 추억 등등이 복잡하게 얽혔던 것 같다. 그런 복잡한 순간을 담아서 아마 셔터를 누르지 않았나.

적어도, 누군가에게 좋아요를 원하고 올린 것은 아니니까. 

다시 보니 정말 다르긴 다른 것 같다. 이건 마치, 독립 기념 사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