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경상도, 부산

출세의 허상, 아홉수의 부산 여행(1) - 2012년 부산 지스타 여행 20121108~09

스타(star) 2014. 7. 17. 03:23

출세

스물아홉살. 이십대의 끝자락을 나는 어떻게 보냈나 생각해 본다. 오랜만에 옛날 부산 여행에 갔던 사진들을 꺼내보며 옛 기억을 떠올려 본다. 지금 쓰는 글은 2년지나 지난 시점에서 쓰는 회상이다.


스물아홉의 나는 이십대에 마저 하지 못했던 것들을 밀린 숙제 하듯 해치워 버리곤했다. 마치, 이제라도 인생의 축을 돌리면 되지 않을까 하는 심정이었다. 음악도 해보고, 여행도 다녀보고, 사람들도 만나면서 이것저것 시도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직장인으로써 운신의 폭은 한계가 있어서 그렇게 길길이 날뛰지는 못했던 것 같다.


바쁘기 때문에, 그래서 무슨 일이든 시간보다는 돈으로 그 노력들을 쉽게 사려고 했던 것이 문제였다. 나는 천민자본주의에 시달리고 있었고, 물질만능과 돈이면 다 된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하소연하자면 그렇다. 성공 욕구가 강했다. 나도 이제는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경제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보란듯이 잘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컸다. 그 욕망이 너무 크다보니 마음의 병을 얻었다.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얼마나 노력을 해야할지는 생각안하고, 내가 누군가와 알고 있다, 내가 누구의 친하다라는 것을 출세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난 그게 성공이라 믿었었다. 그땐 그랬다.


스물 아홉살에 떠난 부산 여행은 그렇게 시작했다. 출세를 쫓아서, 신기루 같은 허상을 부여 잡아보기 위해 떠난 여행이었다. 난 처참하게 소외당했고, 여행을 통해서 많은걸 깨달았다. 그 깨달음의 과정을 한번 같이 되짚어 보도록 하자.

 

 

패기 하나는 갑

국내 최대 게임쇼인 지스타가 열렸다.

친구가 문득 부산에 가자는 패기를 부렸다.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콜했다.

회사 일 때문에 고민 했지만, 이사에게 쿨하게 휴가신청서 한장 쓰고 나는 출발했다.

그 길로 부산을 출발했던 것 같다.

겨우 다섯 시간. 다섯 시간 뒤에 우리는 정확히 광안리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다.

그냥 무조건 밟았다. 밟고 싶은 속도만큼 밟았다. 어짜피 우리 앞길을 막는 것은 별로 없었다.

 

 

내려가면서 이런저런 사진을 많이 찍지는 못했다.

사실 그러는 동안 많은 것들을 놓쳤다.

목표에는 도달했지만 우린 결과만 얻었을 뿐이다.

이렇게 여기가 어딘지, 어딜 향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분명 아래 사진은 광안리 어디쯤인데 왜 찍었는지도 모르겠고, 정확히 어딘지도 모르겠다.

우리 삶의 단편을 보여주는 보기 좋은 사진이라 생각들었다.

 

 

 

광안리의 의미

부산은 참 올 때마다 신기한 것 같다. 외국에 다녀가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서울에만 살다보면 조금만 지방에 나가도 새롭다. 자주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일상이지만, 나에게는 부산도 여행이다.

생각해보면, 거의 해마다 부산에 다녀갔다. 그런데 웃긴게 그 때마다 관광일 뿐이다. 딱히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친구도 한명도 없었다. 부산은 나에게 낯설기만한 관광지였을 뿐이다.

어느 해인가 광안 대교가 완공되고 도착했을 때 조금 의미가 달라졌다. 정말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려보고 싶은 길이었다. 저렇게 시원할 수가 없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

 

 

예전에 더 어렸을 때 처음 부산 왔을 때가 기억난다. L과 함께 부산을 향했다. L이 부산에 있는 대학에 원서 쓰기 위해 내려온 김에 나도 서울에서 부산으로 향했다. 그 때도 패기있게 내려갔는데, 항상 부산 하면 자신감의 표출이었던 것 같다. 스무살의 나와 L은 서로 웃으면서 기분 낸다고 십만원도 넘는 비싼 회를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촌놈이다. 그렇게 취한 상태로 광안리 해수욕장을 돌아다니다가 찜질방에 가서 잤는데 아직도 생각이 난다. 스무살에 내 인생의 삼일은 적어도 부산에 있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부산에 도착하면 습관처럼 광안리를 먼저 찾는다. 해운대는 갑갑하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해안도시의 느낌이 강해서 그런 것 같다. 광안리 백사장을 거닐어야 부산에 왔다는 느낌을 받는다.

후에 서면에서만 3일을 내리 보낸 적이 있는데, 뭔가 찜찜하긴 하더라. 역시 나에게 있어서 부산은 역시 광안리다.

 

지스타

도착하자마자 지스타로 향했다. 게임 업계에서 일한다는 것은 참 여러가지로 피곤한 일이었다.

일단, 업계 사람들을 인사해야했다. 스물아홉 출세하고 싶었던 나는 많은 사람을 알고 지낸 다는 것이 곧 나의 성공이라고 생각 했던 것 같다.

내가 가진 것을 생각해야 하는데 난 그러지 못했다. 인맥이라는 것에 대한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인맥은 주고 받음이다. 나는 인맥이 아니라 인사를 하러 간 것 같았다.

뭔가 조금이라도 이 사람들이 잘나간다 생각되면 그 사람들을 알고 지내고 싶었나 보다.


 

 

지스타는 그런 출세하고 싶은 나에게는 나같은 사람도 있어요 하고 알리고 싶었던 영업의 장이었던 것 같다.

업계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과 아는척해야지. 그게 전부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내 모습이 너무 불쌍 했다.


 

 

지스타 구경

도착하자마자 보드게임관부터 찾았다.

안그래도 얼마전에 알게된 보드게임 협회장이니 보드게임개발사 대표들이니 아는 사람들과 인사를 하기 위해 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물론 대단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오히려 그렇게 먼길을 찾아갔다는 것이 참 귀엽지 않나 생각한다. 내가 뭐가 아쉬워서 갔었던 것일까. 난 보드게임 개발자도 아니었는데. 그냥 좀 순수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확실히 보드게임은 체험이 가능해서 그런지 B2C는 효과가 좋았던 것 같다.하지만, 큰 성과는 없어보였다. 여기에서 보드게임 팔아봐야 얼마나 팔릴까 그런 생각이 드네.

과연 국내 보드 게임들이 외산 보드게임들에 비해서 얼마나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나. 온라인 게임 시장에 비하면 작은 규모이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명맥을 잇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그래도 가장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곳이다. 보드게임관은 항상 유저들로 넘쳐나서 보기 좋았다. 다른 게임 전시관은 그냥 줄서서 플레이 하고 선물 받아가는 것이 메인 컨텐츠이다. 이게 무슨 게임 쇼인지 모르겠다. 줄 세우는 것이 컨텐츠라니. 선물 천원짜리 하나 받겠다고 한시간씩 서서 멍하게 기다린다. 

적어도 보드 게임관에서는 누구나 작은 게임이라도 한번 체험해볼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이제 전시장에 들어갔다. 아직 오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여유있게 둘러볼 수 있었다. 지스타는 주말에 오면 안된다. 중고등학생을 비롯해서 온갖 사람들이 넘쳐나므로, 시간적 여유가 많은 갓수들만 방문하는 평일에 가야한다.

그래야 상품도 다 받고 그나마 조금 여유로운 상태에서 보고 싶은 게임도 플레이 해보고, 사진도 한장 더 찍을 수 있다. 사람 많은 곳이 점점 싫어진다. 나이가 먹어가는 것 같다.


 

 

근데 솔직히 말하면, 어떤 게임을 봐도 별로 감흥이 없다. 이미 게임이란 것에서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게임은 내게 밥벌이 그 이상의 수단도 아니었던 것 같다. 직업적인 책임감과 무게만 있을 뿐 내가 더이상 보람을 느끼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염증과 서로 만나봐야 괴로운 관계에 놓여있는 그런 업계이자 판에 불과했다.

난 아마 게임과 이별하기 위한 여행에 온 것 같았다.

 

 

한창 돌아다니다가 생각해보니 부산 간다고 하니 회사에서 동료들이 지스타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한정판 같은 것들을 대신 구매좀 해달라고 했던 것 같다. 그리 어려운 퀘스트가 아니라서 많이 샀다. 생각해보면,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와우가 꽤나 인기 있는 편에 속했는데 이제는 정말 매니아 게임이 되지 않았나 싶다.

판다리아가 헬게이트를 열었다.


 


 

지스타 B2B

사실, 더 정확하게는 B2B관을 가야했다. 그게 원래 내 목표였다. 기자 출입증을 가지고 기업홍보관을 찾았다. 사실, 게임업체들은 B2C로 입점으로는 큰 효과를 보지 못한다. 온라인 마케팅에 비해서 오프라인 마케팅은 정말 구색 갖추기 정도밖에 안된다. 대부분의 회사 관계자들은 B2B에서 일 아닌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수출 상담, 무슨 상담 등등 글쎄 비지니스들이 여기에서 많이 이뤄지긴 했지만, 얼마나 더 가시적인 성과들을 가지고 돌아갔을지 모르겠다. 새로 창업한 회사들 힘내라고 얘기도 해주고, 플레이도 해줬지만, 뭐라고 더 할말이 없었다.

나도 정신적으로 황폐했던 것 같고, 회사들도 이미 옛 동료에 불과한 나에게 필요 이상의 친절이나 호의를 베풀지는 않는다.

그리고 의례 다른 사람에게도 했을 법한 멘트들을 날려주었다. 잘 부탁 한다느니, 다른데 누구 만나면 얘기좀 잘 해달라느니 그런 것들. 결국 멀리 왔지만, 나와 마찬가지 입장이었다.

이 사람들은 비싼 부스까지 차려서 이런 영업을 하고 있고, 나는 발품 팔아서 영업하고 있었고.


 


여기저기 지인들의 회사를 다니면서 게임을 플레이 해보니 나름 고생 많이 했다는 생각도 들고, 기분이 묘하더라.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날 수록 내가 여기 뭐하러 왔나 하는 회의감도 들기 시작했다.

그냥 이제 답답함에 빨리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