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난 10년간 여섯 번의 이사를 하고, 열 몇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두어 명의 남자를 만났어요. 다만 그랬을 뿐인데. 정말 그게 다인데. 이렇게 청춘이 가버린 것 같아 당황하고 있어요. 그동안 나는 뭐가 변했을까. 그저 좀 씀씀이가 커지고, 사람을 믿지 못하고, 물건 보는 눈만 높아진, 시시한 어른이 돼버린 건 아닌가 불안하기도 하고요.
이십대에는 내가 뭘 하든 그게 다 과정인 것 같았는데, 이제는 모든 게 결과일 따름인 듯해 초조하네요. 언니는 나보다 다섯 살이나 많으니까 제가 겪은 모든 일을 거쳐갔겠죠? 어떤 건 극복도 했을까요? 때로는 추억이 되는 것도 있을까요? 세상에 아무것도 아닌 것은 없는데. 다른 친구들은 무언가 됐거나 되고 있는 중인 것 같은데. 저 혼자만 이도 저도 아닌 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불안해져요. 아니, 어쩌면 이미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 더 나쁜 것이 되어 있는지도 모르고요.
베타별이 자오선을 지나갈 때 재수했던 주인공과 친구들은 이제 서른이 되었다. 내 청춘도 이 책의 주인공과 그닥 다르지 않은것 같다. 그냥, 몇 번의 이사를 하고, 열 몇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두어 명의 여자를 만나고, 회사 생활 조금 했을 뿐인데. 시시한 어른이 되어 갈지도 모른다는 고민이 컸다.
시시한 어른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 스물 아홉, 아홉수라 불리우는 그 기간 내내 고통스러웠다. 극심한 삶의 몸살을 겪으면서 나는 약해졌는지. 강해졌는지, 매일매일 멘탈을 다시 잡느라 힘들었다. 당시에는 힘들다 따위의 생각은 안하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어려운 상황을 즐겼던 것 같다. 결국, 오랜 내 직장생활의 종지부를 찍고나서야, 나의 이십대를 비로소 완성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막막한 존재들의 악화일로를 걷는 플룻은 보는 내내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 당신도 역시 행복을 기다리느라 지친 서른 살을 견디어 내고 있지 않나.
오랜만에 찌질한 인생들 이야기를 들으니 참 공감가나. 어찌 된 것이 예나 지금이나 변한게 없다. 김애란 작가는 참 그게 좋다. 비관을 건너뛰고 희망이 아니라 비관 다음에 오는 희망을 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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