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개발자/Continent of the Ninth

C9 추억팔이 + 여전히 C9을 찾는 유저에 대한 감사인사

스타(star) 2014. 3. 12. 04:26

에 C9에 관한 포스팅만 하면 기본 댓글이 20개씩 달리는 바람에 한번은 언급해야 겠습니다.

 

제가 C9 프로젝트를 떠난지도 벌서 2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내가 그 프로젝트 떠난지가 2012년 2월이니까. 

그 이후 반년 이후에 C9 국내 서비스는 종료되었죠. 2012년 10월즈음에 종료되었을 겁니다. 서비스 종료한지도 어느새 1년 반이 되어가네요. 사실 그 이후에 꽤나 긴 후유증에 시달렸던 것 같습니다.

 

 

C9을 떠난 이후 이직한 회사에서도 굉장히 좋은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감정몰입이 잘 되지 않더군요. 결국 그 프레임을 깨지 못하고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전히 C9의 개발자라는 그림자에서 좀 벗어날 필요가 있었습니다.

저에게 기대한 사람들에게 많은 실망을 안겨주었다고 생각해요. 그 만큼이나 많은 에너지를 고갈한 상태였고, 할말도 많고 되짚어 볼 것도 많았고, 공부해야 할 것도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글을 쓰면서 되짚어 보는 것들이 꽤나 민감할 수도 있는 사안이죠. 여전히 현업에 있는 팀원들도 있고, 나와는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도 있을지도 모르죠.

프로젝트에는 수 많은 이해관계가 존재합니다. 저 역시 이해관계자이고 다소 편협한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어쩌겠어요. E.H 카에 의하면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하는데. 몇 년 뒤에 제가 남길 소회에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가급적이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프로젝트 자체에 대한 생각만 해보려고 합니다.

잠시 참 안타까운 이야기를 잠깐 해볼까요. 제 친구 중에도 게임 디자이너들이 많은데, 한 친구의 얘기가 기억났습니다. 자신이 청춘을 다 보낸 프로젝트 A에서 Z까지 경험했던 얘기지요. 처음 어렵게 입사해서 기획이 뭔지도 모르고 막연히 게임 개발이란 것을 해보고 싶었을 때부터, 개발할 때는 그렇게 밤을 새고 스크립트하고, 기획하고, 어렵게 만든 프로젝트가 시장에서 싸늘한 반응을 받아들여야 했을 때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밤새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나마 개발비라도 건져볼려고 해외 수출계약하고 동접 100명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면서 서비스를 하던 프로젝트의 마지막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애처로운지 그 때 간접적으로 알게 됐죠. 자신이 직접 마지막으로 서비스 종료 공지를 작성하고, 서버를 내리고 DB파일을 초기화해버렸던 과정을 꽤나 담담하게 이야기 해주더군요.

그 후로 저는 모든 게임은 자신의 수명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끝은 서비스종료라는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리니지나 와우처럼 오랜 시간동안 사랑받는 게임들을 보면서 부러워했죠. 그렇게 오랫동안 우리들의 놀이터를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해보죠. 리니지는 그렇게 오래도록 사랑받는데, 왜 C9은 그렇게 오래도록 자리를 지키지 못했을까 반성도 해보곤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여전히 C9의 현재 PM과 여전히 연락을 합니다. 사실 같이 일해본 적이 단 하루도 없는 친구지만, 프로젝트를 바라보는 부분에서 많은 공감을 하곤 합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곤 했었죠.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C9이 최대한 오래 살아 남을 수 있도록 많은 것들을 남겨주었어야 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만족스러운 만큼의 자료를 남기지 못했죠. C9에는 초기 개발 때부터 남겨진 문서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전설이나 민담같은 형태로 개발하고 있었다고 생각들곤 합니다. TV를 보면 어디에 가면 경기도 민요를 잘 아는 어떤 할아버지가 있는데 그 분에게 가서 노래 좀 알려달라 해봐라 뭐 이런 식이었던 거에요. 그럼 할아버지에게 찾아가는데 얼추 잘 부르시긴 하는데 마지막 부분이 조금 헷갈리시는거에요. 으응 그때는 알았는데 지금은 오래되니 기억이 잘 안나. 뭐 이런 느낌이죠.

후임으로 왔던 PM들이 딱 그런 상황이었을 겁니다. 선사시대에도 벽화를 보면서 아 이 때 사람들이 이렇게 살았구나, 조선왕조실록 보면서 아 조선시대 임금님은 이렇게 살았구나 하면서 알 수 있는데 C9 프로젝트는 그럼 부분이 약했죠. 특히 제가 맡았던 부분들은 더더욱 취약했고요. 좋은 역사적인 사료는 결국 글과 그림의 형태로 저장되어 있었어야 하는데 그 부분을 많이 남겨주질 못한 점이 아쉽네요. 우린 많은 기획적인 결정을 메신저와 구두로 전달했었습니다. 상당히 빠른 커뮤니케이션인 한편에 휘발성도 강했죠.

사실, 나는 문예창작학과를 전공하긴 했지만, 난 단 한번도 조직을 위해 글을 써본적이 없어요. 글 쓰기란 것에 대해서 나 스스로 지독하게도 숭고하게 여기는 성격도 있고, 스스로의 필요성이 아니면 일을 하는 타입도 아니죠. 블로그에 자기 만족을 위해 쓰면 몰라도 적어도 당시에는 돈을 받으면서 글을 쓰고 싶지는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개발팀에 있을 때는 그날그날의 많은 감상들을 많이 올리지 못했죠. 가끔 개발이 막히거나 괴로울 때 짧게 적은 일기들이 있긴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었죠.

사실, 뭔가를 생각하고 기록하고 남기는 취재력에 대한 부분은 후에 이직한 회사에서 배운 것이 더 커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그 때 당시의 경험이나 느낌 중에서 거품이었던 부분은 가라앉고, 핵심적인 부분들만 떠오르기 시작하더군요.

언젠가 프로젝트에서도 떠날 때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상당히 많은 감정들이 교차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떠날 사람과 남을 사람들은 정해져 있었죠. 나는 꽤나 오랜 기간동안 C9이라는 프로젝트와 미래에 대해 미련을 가지고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마치 오래된 연인과 헤어져야 하는 상황에 처한 듯한 기분이었으니깐요.

퇴사를 앞둔 몇 달간은 자동차로 판교까지 출퇴근을 했었는데, 외곽순환도로에서 몇 번이나 눈물을 쏟으면서 프로젝트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기도 하곤 했습니다. 그 동안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은 일말의 코드 덩어리에 불과하긴 했지만, 이건 살아있었죠. 생명체였다고 생각해요. 수 십명이 쌓아올린 코드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거대한 법칙과 룰에 따라 매일 뱉어내는 데이터를 보고 있자면 때로는 무서운 생각도 들었죠.

 

그리고 나서 한동안 잊고 살았습니다. 새로운 프로젝트와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고 있었죠.

저는 솔직히 국내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기사가 나왔을 때도 사실 몰랐습니다. 그 만큼이나 멀리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저는 또 하나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래와 같은 향수를 앓고 있는 유저들을 발견한 것이죠. 어떻게 제 블로그까지 찾아오게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상당히 신기한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첫사랑을 찾아 싸이월드와 아이러브스쿨을 검색해보는 그런 감정이 아닐까 생각되요.

저는 참 안타깝게 서비스를 할 때 유저들에게 미안한 것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국내 서비스에서 패치 데이터들은 거의 제손을 다 거쳐서 전달되게 되어 있었는데 제가 일으킨 버그들이 한 두번도 아니고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을 만들어 냈었죠. 수 없이 많은 잠수함 패치들을 감행하기도 했고요.

사실 패치 한번 잘못되서 서버에 난리가 나면 그 때는 너무 우울하기도 하고, 뒷감당이 안되서 점점 두려움도 커지곤 했었죠. 점검 이후에 게시판과 전체 채팅창을 보는 일이 제일 두려웠습니다. 수 만명의 디스와 성화를 감당하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니죠. 분명 정신 차리고 올렸는데도 불구하고 버그를 내기도 하고 멘탈이 바닥까지 치면 가끔 업데이트 앞두고 휴대폰 다 꺼놓고 잠수타고 싶었던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유저들이 걸고 있는 기대가 크기 때문에 우리도 그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죠. 그게 우리가 밤새 개발해야하고 열심히 만들어야한다는 목표의 원동력이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저는 크고 작은 실수들에서 많은 경험을 얻었습니다. 가까스로 안정적인 상황들이 만들어졌나 싶었지만, 그런 달콤한 시간은 그리 길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수 많은 경쟁작들의 출현과 새로움에 대한 유저들의 갈망, 그리고 큰 시대의 흐름은 우리 모두를 피해갈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이 세상 모든 게임은 고전게임이 됩니다.

저 역시 어린 시절 밤새 즐겨했던 게임들이 있어요.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대항해시대, 철권,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등등. 저는 그 게임을 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모든 게임은 고전게임이 되었죠. 적어도 제 어린시절은 이 게임들이 있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지금도 제 친구들은 그 때 게임들을 하면서 누렸던 즐거움에 대한 향수가 있어요. 몇 년이 지나도 친구들과 게임 이야기를 하면서 밤새 추억팔이를 하곤 합니다.

C9을 대표할만한 개발자들과 관계자들은 너무 많은데, 제가 대표해서 인사를 드리기에는 좀 무리수일 수도 있지만, 뭐 어쨌든 제 블로그니까. 이렇게 기억하고 흘러흘러 여기까지 찾아와주신 국내의 마지막 유저분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감사의 인사와 미안함을 전합니다. 제 생각은 현재 개발사나 다른 퍼블리셔들과 전혀 이해관계가 없고 관점도 다를 수 있습니다. 여전히 해외에서는 활발히 서비스를 하고 있는 상황이구요. 그래서 조심스럽게 이야기 해야 하는 것을 양해부탁드립니다.

C9이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추억을 가진 게임이라면 그 동안, 행복한 시간을 함께 해주어서 너무 고맙습니다.

 

아래는 C9 일본 서비스 런칭쇼입니다. 많은 사랑을 받은 시간들이었기 때문에 올려드리겠습니다.

 

 

많은 유저분들이 다양한 커뮤니티에서 C9을 여전히 기억해 주셔서 캡쳐해 봤습니다. 

제가 항상 해오던 말인데, 저와 제가 진행하는 사업과 후배들 제자들은 적어도 C9 프로젝트를 뛰어 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