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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일지] "입원수속과 검사, 그리고 병원 원무과와의 갈등" (2) - 20150506

스타(star) 2015. 5. 16. 16:43

자리를 비우기 쉽지 않다

다음날 오전부터 부지런히 뛰었습니다. 먼저 다니던 체육관에 한달간 휴관 신청을 하고 세면 도구들을 챙겨왔습니다. 그 길로 바로 병원으로 다시 향했습니다. 교통 사고 이후에 환자들이 겪어야 할 것들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특히, 집중적인 치료를 요하는 경우에는 더욱 큰 문제입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도 올스톱이 되어버렸습니다.

우선, 회사에도 몇 주간 나갈 수 없다고 이야기 해야 했습니다. 업무와 관련된 모든 스케줄을 재조정해야했어요. 그 과정 중에서 피해자는 나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과 동업자, 그리고 거래처 모두가 피해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새삼, 사회의 톱니바퀴와 내 역할이란 것에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고, 그 무거운 책임들을 잠시 내려놓는다는 것이 쉬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일하던 사람들은 아파서 누워있어도 마음이 편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사고 후유증이 커져 추후에 더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것 보다는 집중적인 치료를 하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하는 것이니깐요.



병원 접수

병원에 와서 오늘은 조금 더 자세한 진단을 받았습니다. 정형외과에 과서 의사 선생님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두통이 심해서 머리쪽 CT를 찍어봤습니다. 다행히 혈관이 터지거나 한 부분은 없고, 조금 부어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그래도 걱정이 됩니다. 목, 요추, 허리 염좌 판정을 받았습니다. 근육통이 있기 때문에 매일 물리치료를 받고 몇일 뒤에는 주사치료를 병행하기로 했습니다. 입원을 하기 위해서 각종 검사들이 뒤따랐습니다. 

사실, 교통사고 후유증은 상당히 뒤늦게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멀쩡하다가도 아드레날린 때문에 고통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다음날 못일어나는 경우도 많고요. 데미지가 누적되었다가 2주뒤에 갑자기 다리가 풀려서 주저 앉는 사례도 있습니다. 

오랜만에 피검사, 소변검사등을 하고 병실을 안내 받았습니다. 거의 두세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입원한 뒤에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병원 침대에 앉아 있으니 정신이 멍해지더군요. 내가 여기 왜 와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하루종일 짜증과 복잡함에 이성적인 판단이 쉽지 않더군요. 스트레스가 상당했습니다. 

사고 환자는 필요한 모든 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X-RAY는 물론이고, CT, MRI등등 요구하시면 찍어줍니다. 간혹 둘중에 하나만 가능하다. 목과 허리만 선택해서 가능하다고 말하는 병원이 있으면 다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솔직히 의사가 망설이길래 저는 그냥 제돈내고 찍겠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제가 청구하면 되니깐요. 내 몸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내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원무과와 갈등

한참 멍때리고 있는데 병실로 전화가 오더군요. 원무과로 내려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무슨일인가 싶어서 알겠다고 하고 내려갔습니다. 원무과에서 한 직원이 오더니 자동차 보험 입원 환자들은 다음과 같은 항목에 싸인을 해달라고 하면서 종이를 하나 내밀더군요. 내용을 봤더니 크게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1. 경조사를 제외하고 외출/외박이 불가능하다.

2. 그외의 사유로 외출/외박을 하려면 퇴원을 해야한다.

여기가 군대나 기숙사도 아니고 신체의 자유를 구속하더군요. 그러더니 원무과 과장이 나와서 원래 이게 법적으로 다 이렇게 하기로 했다면서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하더군요. 법적 근거를 가져오라고 실랑이를 했습니다. 언성이 높아지고 원무과 과장이 공문을 가져오더군요. 제가 그 부분을 발췌해보았습니다.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

[시행 2015.2.6.] [대통령령 제25149호, 2014.2.5., 일부개정]


제12조(입원환자의 외출 또는 외박에 관한 기록 관리) ① 의료기관이 법 제13조제1항에 따라 교통사고로 입원한 환자(이하 "입원환자"라 한다)의 외출 또는 외박에 관한 사항을 기록·관리할 때에는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다음 각 호의 사항을 적어야 한다.  <개정 2012.8.22., 2014.2.5.>

1. 외출 또는 외박을 하는 자의 이름, 생년월일 및 주소

2. 외출 또는 외박의 사유

3. 의료기관이 외출 또는 외박을 허락한 기간, 외출·외박 및 귀원(歸院) 일시

② 외출 또는 외박에 관한 기록에는 외출 또는 외박을 하는 자나 그 보호자, 외출 또는 외박을 허락한 의료인(「의료법」 제2조제1항에 따른 의료인을 말한다. 이하 이 항에서 같다) 및 귀원을 확인한 의료인이 서명 또는 날인하여야 한다. 다만, 의료인이 외출 또는 외박을 허락하거나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는 의료기관 종사자가 서명 또는 날인할 수 있다.

③ 외출 또는 외박에 관한 기록의 보존기간은 3년으로 하고, 마이크로필름 또는 광디스크 등(이하 이 조에서 "필름"이라 한다)에 원본대로 수록·보존할 수 있다.

④ 제3항에 따른 방법으로 외출 또는 외박에 관한 기록을 보존하는 경우에는 필름의 표지에 필름촬영 책임자가 촬영 일시 및 그 이름을 적고, 서명 또는 날인하여야 한다.


자세히 읽어보니 외출과 외박시에 반드시 이름, 생년월일 및 주소, 그리고 사유를 적어서 기록을 남기라고 한 것입니다. 나이롱 환자들이 늘어나니 새로 개정된 법률이었습니다. 하지만, 원무과 과장이 말하는 부분은 어디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더군요. 경조사니 뭐니 다 말도 안되는 소리였던 것이죠. 

자동차 보험 치료환자를 잠재적으로 나이롱 환자 및 범죄자 취급하는 것에 매우 화가 났습니다. 게다가 아픈 환자를 보고 오라가라 하는 태도를 보니 어처구니가 없더군요. 상당히 예민하고 기분이 상해있는 상태에서 피해자는 나인데 내가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이 답답하더군요. 

원무과를 상대로 앞으로 불필요한 룰 추가하지 말라고 큰소리를 치고 자리로 되돌아 왔습니다. 당연히 싸인할 가치도 없는 서류일 뿐이었습니다.





병문안 덕택

하루종일 병원에서 멍때리고 있는데 어머니가 와서 이야기도 해주고, 필요한 것들도 가져다 주었습니다. 다급하게 와서 그런지 숟가락도 없어서 식사를 제대로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수건과 옷가지 등등을 싸들고 오셨습니다. 이런저런 집에 일 이야기를 나누고 갔습니다. 사실, 동생이 다음주 월요일에 캐나다로 유학을 가는데 배웅도 못해줄 것 같습니다. 당분간 집안 일도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저녁에는 친구 H가 문병을 왔습니다. 치킨을 하나 시켜서 휴게실에서 먹었습니다. 입맛이 없어서 한조각 먹고는 말았습니다. 그래도 친구들이 와주어서 그럭저럭 기분이 나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바뀐 환경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적응해나가고 있습니다. 다들 이만해서 다행이라는 이야기들을 합니다. 정말로 어디 하나 부러지거나 했으면 더 큰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