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오늘의 항해일지

우리 마음의 패턴 잠금 풀기

스타(star) 2017. 10. 9. 04:34

1. 

추석에는 푹 쉬었다. 그야말로 푹 쉬었다. 잠시 되돌아볼 시간과 여유를 가지는 것이 너무 좋았다. 겨울동안 바빠질 터이니 지금이 소중한 시간이 될 것 같다. 10월은 최대한 휴식을 가져보려고 생각했다. 내 인생에서도 꽤나 중요한 순간이거든. 내 삶도 잘 달리던 차가 마치 단속카메라 구간을 지나가듯이 잠시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속도를 늦춰보았다. 

시골길을 따라 달리며 음악을 듣는다. 내가 지나간 순간들이 지나간 길로 남는다. 백미러를 보지 않는 습관은 위험하니까 가끔은 뒤를 힐끗 쳐다보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이미 지나간 길에 대해서 크게 생각하지 않게 된다. 지금와서 떠올려 봐도 내가 무슨 길을 거쳐서 왔는지 잘은 모르겠다. 어쨌든 그냥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을 뿐이었다. 

차가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로 들어가니 도로가 단순해지고 속도도 늦어진다. 그러고나니 많은 생각에 잠긴다. 이게 과연 옳은 길을 가고 있는지, 너무 돌아가는건 아닌지, 교차로에서 내가 좋은 선택을 했던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더라. 내 마음과 방향은 애초에 네비게이션을 찍지 않고 달렸으니 제대로 가는지는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자주 헤맨다. 어디 엄한 길로 빠져서 표류하고 있지는 않나 걱정이 될 때도 있었다. 쫙깔린 도로 대신에 좁은길과 비포장도로를 열심히 달린 덕분에 운전실력은 많이 늘었다. 목적지까지 가는 길은 참 다양하므로 같은 목적지에 도착했더라고 하더라도 각자의 실력은 다를 수 밖에.


2.

최대한 가까이 있는 것들은 잠깐 시선에 비켜두고 먼 곳에 집중해 보려고 했다. 그러고나니 가까이 있는 어지러운 것들은 크게 거슬리지 않더라. 주변이 자연스럽게 흐려졌다. 사실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목표가 저기 보이는데 그냥 신경 안쓰면 그만이다. 당신들의 목표도 항상 이렇게 보였으면 좋겠다. 접사렌즈로 찍다가 가끔은 망원렌즈로 확 땡겨서 찍어보면 보이는 것들이 새롭다.



3.

관용은 참 어려운 문제이다. 도대체가 무엇을 어떻게 용서하고 아량을 베풀어야 할지 도통 어렵다. 멋진 뒷모습을 남기고 싶지만, 내 마음이 쉽게 놓이지 않는다. 여지껏 나를 이끌어온 힘의 팔 할은 분노와 증오였다. 이 강력한 핵에너지를 연료로 썼다. 이것을 이제와서 친환경에너지로 이제 바꾸려니 쉽지 않다. 덕분에 추진하던 어떤 일이 성공해도 항상 폐기물이 남았다. 이 폐기물을 어디에 버려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 처리가 곤란하다. 

맘에 들지 않는 것들에게 "에라이 시원하게 그냥 다 망해버려라." 이렇게 생각하고 정말로 그들이 망하는 꼴을 봐야 고소하고 속이 시원할까. 나는 이 어쩔 수 없는 마음을 질질끌고 고해성사소로 가본다. 난 왜 당신이 잘되길 바래라고 말할 수는 없는 건가요. 내 정신적으로 가장 취약한 부분은 어디인가요. 왜 나는 그것들을 떨쳐버리지 못하는가요. 난 왜 손해 본다고 느끼는가요. 왜 나는 항상 마음과는 반대로 말하는 것인가요. 신부님의 기도합시다 라는 한마디로는 내 이성은 억지로 떠밀어 보는데, 도통 가슴속까지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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