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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오늘의 항해일지

27.5세


1.

기억을 떠올려 2010년을 되짚어 본다. 싸이월드에 적어둔 일기장들을 꺼내며 내 새파란 날들의 자취들을 더듬어 본다.  누군가를 의식하고 글을 쓰지 않기로 했는데. 그러나 나는 마찬가지로 여전히 지독한 갈증에 시달린다. 열어보고픈 상자를 앞에 둔 판도라 마냥 안절부절 못하며 마음 속을 노크 하며 밤새 주저거린다. 이제는 더이상 고민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고민한다. 흔들리지 않는 나이가 되려면 아직 멀었나 보다. 그래도 여전했다. 원고 앞에 나를 마주하는 일 만큼은 멈출수는 없더라. 활자들은 점점 마음속에 쌓여가는데 그 무게를 못이길 때가 되면 잠시 바닥에 내려두는 상황도 필요하다.

내 안의 이야기를 점점 안하게 되었다. 이제는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린 탓도 있고, 하루 한알씩 삼켜야 버틸 수 있던 것들이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은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인가. 그럭저럭 견딜만 했다. 되려 예전에는 어렵게 난수방송마냥 어렵게 적으려고 했었다. 내 속내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내 방법대로 암호화를 해놓은채로 내 방식대로 해석하면 그게 좋았다. 간혹, 그런 마음이 들키기라도 한다면, 일종의 비밀을 공유하는 것 같은 미소가 오고갈 수 있었다. 숨이 트이곤 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일종의 선제 공격이다. 세상이 나를 속일지라도. 내가 먼저 속이는게 차라리 낫다.


2.

그 때는 매일 같이 일렁이고 가슴이 답답하곤 했다. 평온함을 되찾고 싶은 마음에서 글을 써내려가곤 했는데, 일종의 예술혼으로 감정을 이겨내려고 했던 나의 승화과정일지도 모르겠다. 감정의 과잉이 일어나면 언제나 그 해방구로 글을 썼다. 글을 멈춘다는 것은 지극히도 고요하다는 것일테니. 억지로라도 이렇게 쥐어 짜내면 참기름 마냥 한방울 정도는 만들어 낼 수 있을지 모른다.


3.

추억을 남기는 것이 점점 귀찮아 진다. 추억 따위를 되새김질하기에는 사치스럽기도 하고, 현실을 붙잡으려는 노력이 더 커지는 나이이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기다리지만, 가끔은 가지말라고 잡아 끌고 싶을 때도 있다. 이렇게 가끔은 혼자 대화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저물어 가는 하루안에서 2층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창문을 한껏 열어두고 웅성거리는 소음을 배경삼아 노트북에는 하루를 적어 내려가는 시간. 나에게는 더없이 그 시간이 소중했다. 딱히, 외롭지는 않았다. 대신 고독했던 것 같다. 노트북을 덮고 느즈막히 막차를 타고 집으로 가면서 서울의 밤을 관광객마냥 바라본다. 조용히 어딘가 숨겨둔 내 별을 찾아보면, 비구름이 잔뜩 껴있던 하늘 저 뒤로 그 별이 보일 것만 같다. 조용해진 종로의 거리 어디쯤에서 잠시 버스에 내려 이곳 저곳을 걷는데 온통 내 기억의 파편들. 이어폰을 꽂고 볼륨을 세칸 정도 높이고 걸어가면 11월의 어느 하루가 또 지나간다. 

서른도 이제 어느새 하프타임, 나의 전반전은 어땠나. 추가 시간에는 뭘했나. 후반전은 이제 어떻게 준비해야하나. 낭만 타령 끔찍하게 하다가, 이제는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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