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오늘의 항해일지

내 언어는 38.1℃

스타(star) 2020. 8. 21. 03:54

잠 들지 못한 날들

언제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할까.

어렸을 때 부터 나는 무엇하나 뜻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남들은 다 갖고 있는 그 흔한 고등학교 졸업장 조차 없었으니 내 삶은 심하게도 꼬여있었다. 그 시절에는 성공보다는 실패를 더 많이 했고, 마음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세상에 입은 상처가 많던 청소년과 청년 시절이 있었다. 고등학교 자퇴, 벤처회사 입사와 퇴사, 창업과 폐업, 4년의 입시, 검정고시, 진로 고민, 생활비, 새벽 인력시장, 산업기능요원, 서울의 강북 어디쯤 반지하방에 살면서 가장 하층민의 삶을 살았다. 이 어려운 것들을 어떻게 다 극복했나요라고 물어보면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잠 들지 못하는 무수히 많은 날들이 있었고, 시와 소설 일기를 쓰면서 내 안의 것들을 비워내면서 겨우 버텨왔던 걸로 기억만 남았다.

실패하는게 두려워 무엇이든 가볍게 생각하려 했고, 애초에 기대를 하지 않았으므로 무엇이든 작은 것이라도 받으면 기뻐했다. 그게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해줄 수 있었다. 그 때의 나는 너무나도 소심하고, 내성적이라서 남들과 대화를 하는 것도 두렵고, 사람과의 교류를 어려워 했다. 좁은 인간관계로 한명, 한명이 너무 소중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염세적이고 비관적이었으며, 헛된 기대와 작은 희망도 갖지 않으려 했다. 그래야 그 희망과 현실의 괴리에 내가 힘들지 않을 수 있었으므로. 

 

뜨거운 마음, 차가운 언어

힘든 일들을 가볍게 생각하는 부분은 내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는 있었다.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또는 애초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처럼 여길 수가 있었다. 덕분에 나는 어떤 상황이든 냉정함을 잃지 않는 모습과, 상대에게 쉽게 속마음을 들키지 않을 순 있었다.

그러나, 이것도 부작용은 있었다. 내가 차갑게 말을 꺼낼 수록 마음은 더 뜨거워 질 수 밖에 없었고, 그 온도차가 크면 클수록 나는 화상을 입고 그 대상은 얼음에 베이곤 했다. 희망을 품지 않아라고 말할수록 내 마음속 희망은 더 커져 버리고, 기대를 안했어라고 말할수록 내 마음 속 기대는 커질 수 밖에.

어려운 시절의 나는 이런 관점으로 성장해왔다. 이런 판단이 어떤 부분에서 도움을 준 부분은 사실이나, 이제는 이러한 생각을 버려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이제는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내 솔직한 이야기를 해야할 때가 되지 않았나. 울적한 시일이 다 지나갔으므로 그에 맞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돌이켜 보면 나는 말보다 행동이 더 빠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언어는 내게 큰 중요함이 아니었다. 사람은 말로는 천번이든 거짓말을 할 수 있으나, 행동은 작은 것 하나 거짓말을 할 수 없으므로.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했다. 내 언어도 나로부터 나온 것이고, 내 생각으로 부터 나온 것이다. 군자는 언행일치, 따뜻한 마음을 가졌으면 말도 따뜻해야 하고, 행동도 따뜻해야 한다. 비로소 내 길을 찾은 느낌이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사람

뒤늦게나마 고백하자면, 위험하면 피하고 싶고, 상처받고 싶지 않았던 내 안의 어린아이가 있었다. 떼를 쓰고, 자주 삐지고 하는 어린아이가 있었다. 그 어린애는 그래도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 만큼은 놓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아닐까. 

한 때는 생각을 바꾸는 것은, 그 동안의 내 인생 자체를 부정하는 것 같아서 스스로의 선택은 항상 옳았다고 생각했기에 '미안하다, 내가 잘못 생각했다' 라는 말을 못했다. 그러나, 어떤 계기로 자존심을 내려놓게 된 사건은 내 안의 큰 변화 중에 하나였다.

사람의 성격이 잘 고쳐지지 않는다고 하나, 나의 경우에는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나는 습관을 잘 만드는 사람이고, 적응력이 빠르다 보니 원하는 그 무엇도 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몇날 몇일을 고민하고 깨닫고 변하려고 노력하고 연습하다 보면 그 어떤 특이점 같은 것이 있어서 갑자기 주변이 달라져 보이는데, 그 과정은 정말 고통스러움의 연속이다.

자신의 내면을 바닥까지 들여다 보고 자신의 마음 속 깊이 변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심어놓고 나와야 하는 그런 과정이다.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해부하고, 진단하고, 평가하고, 무수히 많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비판 없이 듣고, 자신히 해도 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몇 번이고 되새긴다. 결국 자신의 선택을 정반대로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을 냉철하게 바라보는 것은 매우 고통 스러운 과정이나, 그 후에 갑자기 이상하리만치 차분해 진다. 그 만큼 내 안의 세계와 이해의 폭이 넓어져서 그럴지도. 

내 세계를 한번 무너트려봤고, 그 자존심을 꺽어도 봤으니, 이제는 언어의 온도를 높여야 할 때.

 

내 언어의 온도

얼마전에 책을 읽어보니 사람의 언어는 온도가 있다라는 말이 참 와닿았다. 나는 참 차가운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내 마음은 따뜻한데, 그 온도 만큼 따뜻하면 괜찮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섬세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쉽지 않은 노력을 통해 바꾸고 싶었고, 이렇게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변하고자 했다. 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랬다. 내 언어에 온도계를 달기로 했다.

듣기만 해도 편한, 따뜻한, 내 마음의 온도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거부감 들지 않는, 가까이 하고 싶은, 포근한, 따뜻한 온탕과 같은, 38.1도, 내 언어의 온도는 38.1도로 설정하려 한다. 그렇게 나는 따뜻한 사람이 되겠다. 내 글보다도 더 따뜻한 말을 뱉는, 옆에 두면 행복한, 아름다운, 따뜻한 아랫목과 이불처럼, 자신을 사랑하고, 용기를 갖는, 화려하게 만개한 것보다 적당히 예쁘게 핀, 진심어린, 소중한 마음을 어루만지는, 남을 이해하는, 어떤 말을 할지보다 어떻게 말하는지, 어떤 말을 하는 것보다 어떤말을 안하는게 좋은지, 해야하는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이미 이 글을 쓰는 순간 나는 이미 그런 사람으로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곤충은 자신의 살을 찢는 엄청난 고통의 탈피를 통해 성장하는 것처럼. 나 또한 젖은 날개를 말린 나비처럼 다시 날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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