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오늘의 항해일지

그건 너의 오예야.

스타(star) 2016. 6. 4. 06:49

1.

오해가 있었다. 오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남자는 그렇게 복잡한 구조로 말하지 않는다. 커피를 마시자고 하면 정말 커피를 마시자는 것이고, 기분 좋아지면 보자는 것은 정말 기분 좋아지면 보자는 뜻이다. 문자 하나에 그렇게 많은 정보와 뉘앙스를 담아서 보낼줄 모른다. 근본적으로 남자들은 여자들처럼 폰게임을 잘하지 못한다. 문자 메시지 따위에 다양한 의미를 시처럼 넣어서 함축적으로 표현하는걸 못한다. 특히 위기에 처하면 더더욱 그렇다. 신중을 기한다는 남자들의 단어 선택이 오히려 더 안좋은 상황을 초래하는건 비단 오늘 내일의 일 뿐만은 아니다. 그녀가 어마어마한 오해를 했다. 보면서 참 여자와 남자는 다르구나.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담스러운건 싫어하지만 부담 주는 것은 더 싫어 하는 내가 만든 작품이 되어버렸다. 


2.

친구 L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이인증을 경험했다. 도대체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단다. 지금 내가 그렇다. 뭔가 지금 벌어진 이런 일련의 일들이 이게 꿈 같고 뭔가 현실속에서 일어난 일 같지가 않다. 나 역시도 아직 이게 현실이라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차분히 이야기를 나눠보니 기가막힐 노릇이었다. 뒤돌아보니 아 이게 이렇게도 될 수 있다는 것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게 보통 내가 알고 있던 해결법이었는데, 그녀가 원한 해답이 이게 아니었나보다. 완전히 잘못 짚었다. 그냥 미안하다고 할 수 밖에 없었다. 한번 두번 세번 네번 다섯번 미안하다고 했다. 아니 이게 그러니까 나는 도와주려고 도와줬는데 그게 뭔가 그 방법이 아니었다. 그래서 미안하다고 했다. 일주일만에 마음이 다 정리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 사이 정나미가 다 떨어졌다고 했다. 내가 그런 사람이다. 어찌보면 말과 행동이 따로 놀아서, 표현을 그렇게 한다. 나도 그게 무엇인지 안다. 그래도 일주일이라는 것은 좀.


3.

애써 버텨왔던 시간들이 허탈해졌다. 혼자 노래방에 가서 슬픔을 달래던 것도, 인형 뽑으면서 선물을 준비하던 것도, 애써 억지로 약속 만들어 보려고 잔뜩 협찬 신청해놨던 것들도 결국 무의미해졌다. 아니, 그 결과는 받아들일 수 있다쳐도 그 과정이 말문이 막혔다. 

허탈하다. 말문이 막혔다. 사람마다 다 그런거 있지 않나. 축구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종종 일어난다. 수비수가 너무 열심히 수비하다가 수비수 맞고 굴절되서 자책골 들어가고 그런 느낌이었다. 억울하지만 실점이 났다. 내가 그녀에게 가서 했던 행동은 기껏 판정 무효로 해달라는 항의에 불과할 뿐이다. 아쉽지만 판정은 번복되지 않는다. 답은 그냥 공격수가 열심히 해서 두 골을 넣어야돼.

나는 단 한번도 헤어지자고 한적이 없는데 어느 누가 이걸 보고 문맥상 헤어져야 한다고 하는 것 같다. 다들 세상 보는 눈이 비슷한데 나만 다른가보다. 지금까지와는 뭔가 다르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새롭게 뭔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겠다는 생각이 너무 컸다. 그래서 안하던 짓들을 했는데, 나로써는 꾹꾹 참고 견디려고 했던 것들이 이렇게 보일 수 있었을 것 같다. 

모두가 다 잘못된 만남이라며 헤어지라고 해도 애써 설득해가며 지켜왔던 시절이 있었다. 하루에도 수백번씩 생각들과 싸웠었다. 화가 나기도 하고, 기가막히기도하고, 그랬는데 귀를 모두 막고 내 판단만 믿고 가기로 했는데 이미 그런 기억들을 다 까마득한 추억이거나 잊혀졌나보다. 


4.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래도 결과적으로 나쁘지는 않았던 것이 하나있었다. 내가 바라던대로, 그녀가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모습보다는 당당하게 걷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멋있었다. 내가 바라는 모습이었다. 딱 한가지, 그녀의 마음이 나와 멀어졌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내가 생각했던 그녀의 모습이 있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 

모르겠다. 그냥 내 사랑의 형태가 이렇다. 너무 붙잡거나, 너무 놔버리거나. 그녀들은 그 과정속에서 스스로 설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내 사랑은 그녀들이 일어나는 시점에 보통 끝이나곤 했다. 

내 사랑의 모습은 항상 이런식이었다. 그래서 그게 너무 슬프고 항상 두려웠다. 언젠가는 이런 형태의 사랑을 이해해줄 사람이 있을거라 믿고 싶었다. 글과 말을 보지 말고 행동을 봐줄 수 있는 사람말이다.

세상 살다 보면 누구나 억울할 때도 있겠지. 그래도 진심은 반드시 통할 것이다. 아니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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