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 연구소/나쁜 연애

"나는 정말 당신을 사랑하는 것인가?" - 플라톤의 사랑에 관한 정의.

스타(star) 2013. 7. 26. 16:47

플라톤의 관점

에로스는 사랑을 뜻한다. 사랑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영혼의 활동이자 특히 의지적 욕망의 능력이다. 사랑을 이렇게 보았다는 것은 사랑이 결코 수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사랑은 이루는 능력이지 이루어지는 상태가 아니고, 사랑 받는 자의 능력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의 능력이다. 사랑은 철저히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행위이다.

사람들은 사랑은 근본적으로 대상에 의존한다고 본다. 프롬의 말처럼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고 사랑할, 또는 사랑받을 올바른 대상의 발견이 어려울 뿐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플라톤의 따르면 정말로 어려운것은 사랑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의 기술'도 필요하다고 한다. 사랑은 사랑하는 자 속에서 나오는 것이지. 사랑받는 자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의 주체

사랑이 능동적 행위라고 해서 사랑이 지향하는 대상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욕구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다. 우리의 욕망은 기본적으로 대상을 지향한다. 다만 우리가 일처적으로 주목하는 것은 바깥의 대상이 아니라 내적으로 욕망하는 동기이다. 사랑할 때 어떤 것에 대한 내적 욕구 없이 곧바로 다른 사람에게 돌진하는 법은 없다. 우리는 자신에게 타자에게로 접근해야 할 내적 동기를 먼저 부여한다. 그리하여 욕망의 대상을 외부에 두지 않고 자신의 속에서 정립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욕망할까? 

소크라테스가 말한다. 어떤 누구도 의도적으로 악하거나 추한것을 추구하지는 않는다고 누구나 좋고 아름 다운 것을 욕망하고 사랑한다. 허나 이때에도 아룸다움과 좋음도 외적대상은 아니라 사랑의 주체가 스스로 인식하고 지향하는 내적 대상이다.



사랑의 생성

그렇다고 내적 대상에 관한 지향적 욕망만으로 사랑의 목적이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자신이 잉태한 것을 아름다운 것 안에 생성'함으로써 완결된다. 여기서 '자신이 잉태한 것'은 자신이 아름다운 것으로 욕망하는 내적 대상이고, 이는 사랑받는 아름다움을 지닌 외적 대상 속에서 실행되어야 한다. 이 아름다움을 외부 대상 자체에 내재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사랑하는 주체의 관점에서 타자 속에 이식된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것 안에 생성' 된다는 것을 '아름다운 것'이 우리의 사랑에 적극적인 영향력을 행사 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타자에게서 발견되는 아름다움은 바로 사랑하는 자의 아름다움에 관한 판단과 해석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결론

흔히 믿듯이 아름다운 사람이 나에게 다가와 내 마음을 흔들어 내 속에서 그 또는 그녀를 향한 사랑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내적으로 욕구하고 사랑하는 아름다움이 나의 기억 속에 간직된 상태에서, 아름다움에 관한 나의 표상에 맞는 사람이 마침 나타나거나 혹은 그런 사람을 발견할 때, 나는 그 기억을 바탕으로 나의 사랑을 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실현하려고 하는 것이다.사랑의 자발적 동기는 어디까지나 '내'가 마련하는 것이고, '해석된' 아름다움을 지닌 사랑의 객체는 내가 잉태한 사랑의 생성 장소이고 그 결실이 맺어지는 장소일 뿐인 것이다. 

조금 씁쓸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