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사랑한 것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A는 적어도 외모는 이상형이긴 하지만, 점점 알아갈수록 실망감이 커져갔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그녀의 여러가지 불편한 행동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실, 사람이란 것은 원래 알아갈수록 장점보다 단점이 더 보이기 마련이다. 난 A를 잊기로 햇다.
A에게 편지를 써주기로 했다. 해줄 수 있는 현실적인 조언들. 직설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들을 피드백 해주었다. A가 이 편지를 읽게 되면 우리 사이는 아마도 돌이키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기분 나쁜 내용들로 가득하니까. 말보다도, 글이란 것이 주는 전달력과 상처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 것이다. 내 편지는 아마 쓰레기통으로 가거나 찢어버리는 편이 낫겠지.
누구의 말대로 그냥 내버려 두어도 되지 않았나 싶을 때도 있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상처를 줘야하나. 안 그러면 적어도 친구 정도 사이는 유지했을 것 아닌가.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내 성격이 그렇게는 못하겠다. 적어도 날 만난 이후라면 조금이라도 더 성장하길 바랬다. 내가 좀 악역을 맡을지라도, 냉정하게 이야기 할 수 밖에 없겠다. 니가 무슨 자격으로 그러는거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 그럼 그냥 그 정도밖에 안됐었던 거니까 뭐. 흘려 듣겠지.
결국, 나도 내 부족함을 결국 인정하는 셈이 되어버렸다. 많은 고민을 했지만, 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이별 프로세스를 밟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사람간의 관계라는 것이 자연스러워야하지 않나. 적어도 나는 자연스럽지 않았다.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은 느낌이랄까. A의 모습도 마찬가지로 억지스러웠다.
만약 내가 겪었던 고충을 커버해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날 수 있다면, 그 쪽을 만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뭐 돌이켜 보니 딱히 내가 못한 것도 없었고, 아쉬워 할 것도 없었다. 우린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사이'도 아니었으니까.
그녀도 결국 카테고리 밖으로 옮겨간다.
2.
주말엔 생일을 맞이했다. 작년에는 혼자 울릉도에서 생일을 맞이했는데 올해는 시끌벅적하게 모였다. 몇 년간 나는 생일이란 것을 굉장히 부끄러워하곤 했다. 세상에 내가 주인공이 된 다는 것이 익숙한 느낌은 아니었다.
생일 파티 어디서 할지 고민하다가, 이태원으로, 강남으로 돌아다닌다. 분위기도 좀 내보자. 같이 생일을 맞이한 형과 지인들과, 파티팀 동생들까지 불렀다. 수 많은 사람들이 날 볼 때마다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받는다.
다 마시지도 못할 술을 따라놓고 모르는 이들과 수 없이 많은 대화를 주고 받는다. 어디살아요. 몇 명이 왔어요. 무의미한 멘트들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오히려 상대적으로 고독함이 더 커져간다. 군중 속에 고독이란게 이걸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어떤 애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넌 왜 여기서 놀고 있니? 남자친구 없어?
없어요. 방황하고 있어요.
3.
자고 일어나고, 게임을 하고, 영화를 보다가, 다시 잠들고, 일어나고, 밥먹고, 영화를 보고, 다시 잠든다. 주말 내내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주말을 통째로 삼켜버린 것 같았다. 정신차려 보니 일요일이었다. 이게 왠일이지?
생각지도 않게, L에게 전화가 왔다. 고향 내려가는길이란다. 나랑 뭔가 인연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를 한참 나누게 되었다. 생일 날이라고 그래도 생각해서 전화를 해주니 고맙더라. 대화를 한다는 것은 쓸쓸함을 줄여주는데 충분히 도움이 되더라.
살아온 배경, 환경, 최근에 있었던 에피소드. 여행. 추억거리. 전공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즐거운 기억, 시간.
4.
H와 드라이브를 나갔다. 으례 그랬든지 단골 가게에 가서 조개구이를 구워먹는다. H와는 15년을 넘게 알고 지내다 보니 표정만 봐도 대충 안다. 역시나 서로 고민을 얘기해보니, 비슷한 문제다. 근데, 우리가 확실히 이십대에 나누던 연애관과는 많이 달라졌음을 깨닫는다.
사랑에 눈이 멀어 호구가 되면 편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러기에는 우리가 너무 자존감이 강하고 흔들리지 못한다. 인연에 대해서도 이젠 그렇게 아쉬워하지도 않는다. 생각을 조금 고쳐서 더 잘해줄 수도 있었지 않나 싶은 생각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내 곧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지금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확인하는 것 밖에 안되더라.
5.
주말의 끝자락에 또 새로운 사람을 사귄다.
근데 어째. 시간이 지날수록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다. 사람은 다 비슷하다는 걸 확인한다.
6.
최근에 하고 싶은 일들을 학생들과 써봤다. 과연 2주 뒤에 얼마나 다를려나.
밀린 여행기 쓰기
에세이 쓰기
rpg 메이커로 만들기
스타 유즈맵 만들기
강의 녹음한거 들어보기
국내 여행가기
옷 사러가기
회사 홍보할 방법 찾기
책읽기
해외 여행가기
요새 정말 글쓰기를 게을리 했던 것 같다. 조금씩이라도 덜어내는 일들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