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오늘의 항해일지

섬에는 환자도 의사도 없다.

스타(star) 2015. 4. 2. 02:01

1. 

프랑스의 한 섬은 아무나 들어가고 나갈수가 없다. 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정신 병원이기 때문이다. 특이하게도 이 섬에는 환자가 없다. 또한 의사도 없다. 모든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치유한다.

예전에 한 의사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럼, 선생님의 고통은 누가 치료해주나요? 저도 그게 참 힘들었지 말입니다. 제가 신경정신과를 선택한 것은 책상 하나만 있어도 창업이 가능했기 때문이거든요.

정신과 수련의 생활 때 저는 정신과 치료를 받았어요. 나 스스로가 환자가 되어 나의 무의식적인 문제들을 풀어보았죠. 제 스승의 진료실에서 나는 환자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할지 고민했습니다. 

사실 말입니다. 정신과 의사를 해도 좋을 만한 자질과 정신세계를 구축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합니다.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지 초조해하곤 했죠. 의사의 말 한마디에 따라 그리고, 표정 변화에 따라 나의 생각과 기분이 오락가락했습니다. 나의 지나친 경쟁심리, 인정받고 싶은 욕구 그리고 무의식 깊이 들어있던 열등감을 뿌리째 뽑은 느낌이었죠. 의사 가운을 입고 나서는 내가 완전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말이죠. 의사와 환자의 차이는 종이 한장에 불과합니다. 그것이 제가 지금 의사 생활과 인생에 근원적인 모티브가 되고 있습니다.




2.

서울에 판사가 되어 있어야 할 우리 아들 판국이는 그 후로 소식이 끊겼다. 아들이 병에 걸린 것 같아요. 소록도에 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어미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소록도로 향했다. 내 아들이 판국이가 그럴리가 없소. 소록도에서 아들 판국이를 마주한 뒤로 아낙은 그 곳에 터를 잡았다. 


3. 

이 계절은 나도 가끔 혼을 다른 곳에 두고 오기도 한다. 나 역시, 동문서답을 하거나, 너무 추상적이거나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곤 했다. 뭔가를 생각해야할 시간에 생각을 미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요 일전에 혹시 잘 쓴 기획서 샘플이 없냐고 물어오는 학생들이 있었다. 참으로 난감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고민을 쉽게 해결하고 싶어하는 눈치다. 정작 제일 중요한 것은 삽질하는 시간과 그 경험인데 그걸 스킵하고 싶어한다. 

달마대사는 단지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만 해도 되던데 왜 나는 그런 깨달음을 안겨다 주지 못했는지 모르겠더라. 

지식으로 전달 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며, 본인이 직접 깨달아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사람들은 경험과 기억마저 대신 해달라고 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아니, 그래서는 창작활동을 할수가 없다. 이 지점을 깨달아야 크레이터로써 길러진다. 그렇지 않고서는 단순한 노동자일 뿐이다. 

크레이터를 키워낸다는 것은 참으로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사실, 정말로 아무것도 가르치지 말아야 하는 시간이 있다. 어느 고승에게 가서 수련을 하러 갔더니 십년 동안 빨래와 설거지만 시켰다는 것도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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