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2011 태국 이별 여행

[태국 여행] "카우산로드의 밤" - 이별 여행의 의미(2) 20110923

스타(star) 2015. 6. 16. 03:16

카우산 로드의 밤

밤 늦게 카우산 로드에 도착했지만, 생각보다 환했다. 밤 늦게까지도 많은 술집이 영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낭여행자들이 몰려드는 동네 중에 하나이다. 좋게 말하면 서민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지저분했다. 그래도, 카우산 로드는 존재 자체로도 즐거운 곳이다. 매우 저렴한 물가가 너무 좋다. 숙박이며, 식사며 모든 비용들이 엄청 저렴하다. 가난한 배낭여행자들의 성지라고 하는 이유로 충분한 것 같다. 머나먼 이국땅에서의 첫날을 이렇게 아무것도 안하고 보내기가 아쉬워서 가볍게 맥주 한잔 하자며 그녀를 데리고 거리로 나섰다. 




Apple에서

Apple이라는 작은 펍에서 우리는 맥주를 두병, 그리고 프라이드 치킨을 주문하고 서로 술잔을 기울였다. 밤새 춤추며 노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참 행복해 보였는데, 저들과 동참할 수 없었던 우리가 참 낯설었다. 아니,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그녀가 보였다. 그녀는 이렇게 노는 것이 익숙하지 않고, 이 공간과 공기가 아직 굉장히 어색해했다. 태국은 남자들에게는 환상적이지만, 물가가 저렴하다는 것 빼고는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가 여성들에게는 썩 좋은 관광지는 아닌 것 같다. 




노는 모습이 너무달라

생각해보면, 그녀와 밤새 춤추며 놀아본 기억이 없다. 그녀는 그런 모습들을 굉장히 싫어했다. 조금만 시끄러운 곳에 가기만해도 발작을 할 정도로 싫어했다. 나는 솔직히 대학 때부터 노는 것만큼은 공부보다도 더 좋아했던 사람이다. 클럽이면 클럽, 나이트면 나이트. 술과 음악이 있다면 어디든 좋아했다. 나도, 내 친구들도 조용히 곱창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니다. 오죽했으면 그녀가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조차 본적이 없다. 그녀는 술을 조금 마실 줄은 알지만 흥은 없었다. 가끔씩은 그녀의 손을 잡고 홍대를 헤매고 싶었던 적도 있고, 강남이며 신사동이며 밤새 칵테일을 마시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만, 그녀는 그런 복잡한 거리는 가기 싫다며 집에 가버리곤 했다. 


생각해보니, 그녀를 만나면서 나는 마음에도 없는 행동과 약속을 했던 것 같다. 그녀의 걱정과 감시 덕분에 친구들과 클럽이며 나이트로 놀러가는 발길을 줄이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그 흥이 어디 가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람들과 어울려 놀지 못하고, 분위기와 박자를 못맞추는 그녀의 모습을 싫어했던 것 같다. 그녀의 조신한 모습은 좋아했지만, 덕분에 재미는 없었다. 그녀는 나와 사는 방식이, 생각하는 방식이 많이 달랐던 것 같다. 노력해서 바뀌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재미있게도, 이별여행을 통해서 상대를 자세히 알게 되는 것보다도, 난 오히려 내 자신의 모습을 더 잘 관찰하게 되었다. 나는 오히려, 내가 스스로를 속이고 있거나, 상대에게 어떤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우린 그런 거짓말을 하는 것을 노력이란 말로 포장해왔던 것 같다. 사람의 만남은 서로 노력할 필요가 거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워야 한다. 뭔가 불편했다는 것은 가치관의 충돌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숙소 예약, 갈등의 씨앗

숙소로 돌아와서 면세품을 정리하고 지쳐서 우리는 바로 잠에 빠져 들었다. 서로에게 어떤 감정들이 복잡하게 교차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눈을 감으면서 들었던 기억으로는 기대와 두려움이 공존했던 것 같다.


카우산 로드의 숙소는 몇 주전부터 신경을 썼다. 잠시 묵고 갈 곳이라서 싸고 시내 접근성이 좋은 곳을 찾았다. 그런데, 여기서 몇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현지에서 쉽게 호텔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총 5박 6일의 일정중에서 우리가 한국에서 예약한 숙박은 3박뿐이었던 것이다. 현지에 도착하면 민박을 가던 호텔을 가든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했던 것이 제일 큰 문제였다. 


이렇게 대책없이 여행을 놀러오다보니 이 문제들은 추후에 고스란히 다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억울 한 것은 한국에서는 그래 그렇게 하자라고 이야기를 했던 부분이 막상 현지에 와서 문제로 발생했다는 것이다. 어짜피 지난 일은 지난 일이고, 앞으로 일어날 문제를 대처해야 하는데 우린 그러지 못했다. 과거를 그렇게 후벼파고 나서야 기분이 풀렸다. 


서로 상처를 주는 것이 너무 익숙했고, 그것을 어루만지는 것도 너무 익숙했다. 이젠 이런 문제 해결 방식으로는 문제가 있었다. 뭔가 어떤 갈등 하나를 해결하려면 너무 많은 절차가 필요해져버렸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이해의 과정속에서 지쳐버리는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