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오늘의 항해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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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star) 2015. 9. 15. 03:54

1.

창백한 여자 아이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스미레 모토. 16세. 밤새워 그녀와 끈적한 이야기를 기다린다 했다. 남자를 자극할 줄 아는, 그 간지러운 채팅은 묘하게도 플로우가 있었다. 그 흐름에 맡기다 보면 어느새인가 새벽이 밝아오곤 했다. 낯선 문장만으로도 그녀는 남자를 벗겨낼 수 있었다. 이미 몇 차례나 손목을 그었다고 했다. 절박하고도 뭔가 다 포기해버린듯한 표정을 짓는 그녀를 어떻게든 취해보려고 주변을 서성거리곤 했다. 그녀는 주소를 알려주었고, 나는 택시를 탔다. 그녀가 어디 있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녀는 항상 어딘가 있었는데 적어도 이곳은 아니었다. 문자를 받고 달려가서 핏물이 가득한 욕조에서 펄떡거리는 그녀를 건져내는 것이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발가벗은 채로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몇 번이나 쓸어 주었지만, 그것을 무엇이라 생각해야 할지 몰랐다. 나의 표정이 일그러질 때면 피범벅이 된 이빨을 드러내며 그녀는 웃었다. 그것은 불쾌했다. 



항상 새벽 세시 네시에 문자가 오곤 했다. 항상 떠오르는 기억이지만, 그 시간엔 택시도 잡기 어려웠다. 그녀는 흔하디 흔한 분홍색 핑크 츄리닝을 입은채로 천정에 매달려 있곤 했다. 어디에서 났는지 머리에는 귀여운 토끼 머리띠를 하고, 우스꽝스러워보이기도 했다. 내 기억속의 그녀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그녀의 트위터에는 오늘 까지만 살게요. 라는 글이 남겨 있었다. 수십명의 남자들의 리트윗이 달리곤 했다. 항상 다음날 죽을 준비를 하던 그녀였다. 그럴때마다 나는 수척해진 모습으로 찾아가서 농담 같은 변명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너 이번엔 진짜 위험할 뻔 했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미안해. 또 못올뻔 했어. 미안해서 더 미안해지고, 그래서 항상 마지막이라면서 그녀는 나에게 미안해했다. 미안해서 죽지 못했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고, 나는 곧잘 농담을 했다. 농담삼아 만났다. 우울에 빠진 그녀의 머리카락을 두손가락으로 집어 올리는 장난을 쳤다. 부모님은? 남자랑 하는게 그렇게 좋아? 몇명이랑 잤어? 그런 것은 금기가 아니었다. 그때마다 그녀는 지루한 내색을 보이면서 냉장고 문을 열곤 했다. 죽을려는 그녀에게 걱정이 아니라 장난을 쳤다. 팔짱을 끼는척하면서 팔꿈치로 가슴을 꾹꾹 찔러대며, 그녀는 그 때마다 소리를 지르고 도망치곤 했지만, 느낌이 참 좋다 했다. 

편지의 끝에는 그녀가 사고를 당해 죽었다고 적혀 있었다. 가족들은 그녀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고 있으며, 조용하게 장례를 치르었다고 전해주었다. 기다리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유품에서 나의 주소을 알게 되었고, 이렇게 편지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라고, 그녀는 내 앞으로 자신이 쓰던 계정과 비밀번호를 남겨두었다.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택시 할증이 풀릴 때쯤 겨우 집으로 들어왔다. 침대에 쓰러진다. 두 주먹으로는 이불을 쥐었다. 얼핏 담배냄새가 옷에 벤 것 같기도 하다. 돌아 누워있다가 천장을 바라봤다. 긴 정적과 한숨이 침대를 쓰다듬었다. "사라졌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글을 작성한 지 40시간 째. 나는 그녀의 계정에 접속한다. 그녀의 흔적을 마음에 하나씩 아로새긴다.

뜬눈으로 밤을 샜다. 천장을 바라보며 상상한 그녀를 떠올린다. 초라한 사람이지만 그 서러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서러움이 나를 덮치기전에 잠에 들어야겠다. 용서할수가 없었다. 그래서 상상을 하곤 했었다. 그녀가 가만히 눈을 감는다. 그녀는 마치 입맞춤을 기다리는 것 같다. 나의 손이 그녀의 얼굴을 어루어 만진다, 내색하지 않으려는 듯 그녀는 수줍게 웃는다. 


2.

피해갈수가 없다. 큰 내상을 입었다. 알면서도 판도라의 상자를 자꾸만 까뒤집게 된다. 내가 어쩔 수 없는 것들로 인해 고통 받는다. 밀어내려고 별 지랄을 다한다. 어쨌든 기분이 나쁘다. 파헤치는 나도 정말 거지같다. 본성이 그런 사람이다. 끝도 없이 파내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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