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오늘의 항해일지

우연히 길을 걷다

스타(star) 2015. 11. 23. 04:10



1.

어린시절 나는 야구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아버지 역시 야구광이었다. 같은 고향이라고 박찬호를 좋아하고, 고교야구를 즐겨보고 리틀야구장에 데려가곤 했다. 아버지는 틈나는대로 나를 운동장에 불러냈다. 초등학교때 내가 집에 와서 TV에 앉아서 야구 중계를 보는 것도 좋아했고, 프로야구 딱지를 모으는 것도 그리 싫어하진 않았던 것 같다. 우린 틈나는대로 글러브를 끼고 캐치볼을 하곤 했다. 부자는 많은 대화가 필요하지 않은 법이다. 하늘에 긴 포물선을 그리면서 떨어지는 플라이볼을 무난히 잡으면 나는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오고간 것은 작은 야구공 뿐이라고 하더라도. 그거면 충분했다.

야구를 하면서 느낀 것들이 많았다. 가족과 더 많이 시간을 보내고, 공하나 덜 줍기위기 자주 대화해야 하고, 공 던질 시간을 벌기위해 적게 일하는 것이며, 더 많이 벌어야 하고, 가장이라고 해서 너무 세상의 고민을 다 떠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2. 

한달간 바쁜 시간들이 흘러갔다. 매일 회사를 다니는 사람은 회사 나가는 것 말고 다른 것을 하고 싶어 한다. 여행을 매일 다니는 사람은 여행 말고 다른 것을 하고 싶어한다. 지금보다 바빠지면, 그리고 지금처럼 평일에 시간이 나지 않을 수 있으니까 되도록이면 멀리가고, 되도록 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내가 상식이라고 여기던 것을 지금도 깨고 있고, 부정적인 생각들을 고치기 위해 지금도 노력할 뿐이다. 


3.

물론, 이래저래 충격적인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윽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늘상 있었던 일이었다. 아스팔트를 깔면서 왔던 길. 오히려 아무일도 없을리가 없는데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냥 내 앞에 이런 다양한 의지들이 존재하는구나 하는 정도인 것 같다. 여태까지 해온대로 하면 되고, 늘상 맞이하는 하루를 맞이하면 된다고 본다. 그 가는 길을 걷다 보면 무모한 도전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동료가 등장하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4.

편지를 써줘요. 4시 10분, 갑자기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지금생각해보니 뭔가가 통째로 비워졌다. 얼마전 전화번호를 바꾸고 나서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작은 미련들과 결별하고, 걸리지 않는 번호들도 안녕이다. 한번도 걸어보지 못한 번호들의 의미가 없어졌다. 그걸로 비로소 옛 연인들과 이별을 완성한듯한 기분이 들었다. 작은 이야기들이 남았고, 이제 내가 생각했던 로맨스의 머리글을 마저 쓰는 일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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