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오늘의 항해일지

어머니랑 명동

스타(star) 2015. 12. 13. 14:09

​1. 

어머니 모시고 처음 해외 여행에 나선다. 가까운 일본이지만 그래도 어머니에게는 첫 해외여행이어서 내심 기대가 큰 눈치다. 여행의 즐거움은 역시 쇼핑이 한몫을 한다. 어머니와 함께 명동 롯데 면세점을 다녀왔다. 지방시 선글라스가 대폭 할인을 해서 매우 기분 좋게 구매하고 나왔다. 모처럼 명동에 나와서 시내 구경을 한다.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오랜만에 본다. 올해 해외여행까지 하면 어머니는 자신이 세운 올해의 목표들을 나름대로 잘 완수하는 셈이라고 했다. 벌써 나에게는 이제 너무 당연하고 쉬운 여행이 어머니에게는 대단한 모험이고 도전이 될줄은 몰랐다. 나도 올해 세운 연 2회씩 해외 여행이라는 약속을 2년 째 잘 지켜나가고 있었다. 어려운 약속이었지만 마지막에나마 지켜낼 수 있어서 뿌듯했다.


2.

명동에 함께 나온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몇 년은 된 것 같았다. 첫번째 기억은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어머니, 아버지와 손을 잡고 크리스마스에 명동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성당에서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양다리를 잃은 거지가 마이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어머니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들고 성큼성큼 걸어나가더니 거지에게 적선을 하고 왔다. 어린 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표정을 올려다 보았다. 아버지는 눈이 휘둥그레해지며 적잖게 당황한 눈치였다. 아니면 어머니의 돌발적인 행동 때문이었을까? 돈의 색깔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천원 정도 넣어줄줄 알았는데 어머니가 통크게 만원을 넣어주고 온 것이다. 넉넉치 않게 살았던 우리 집 입장에서 큰 돈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걸로 내 장난감을 사고 싶었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머니가 내뱉은 "크리스마스잖아" 라는 한마디에 다들 조용해졌다. 우린 6-1번 버스를 타고 미아삼거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저녁에 통닭을 한마리 싸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정말 즐거운 연말이었다.

지금까지도 생각나는걸 보니 인상적인 장면이었나보다. 이따금씩 그 만원의 행방은 어딜 떠돌고 있을지 궁금해하면서 자랐던 것 같다.


3. 

아쉬운 마음에 어머니랑 같이 점심을 들었다. 이왕이면 안가본 곳으로 데려가보고 싶었다. 평소에 좋아하는 태국 요리를 한번 먹어보자고 해서 데려 갔는데 너무 좋아하신다. 다음 여행지는 태국이나 베트남 같은 조금 따뜻한 나라로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우리도 지금 가족이잖아" 라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요즘때처럼 가족과의 관계나 의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나는 주로 내 위주로 살아왔는데 뭔가 우리라고 생각하니 어색했다. 그렇게 효자도 아니고 그렇게 집을 살뜰히 챙기는 것은 아닌데도 그런 것들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다. 

'에세이 > 오늘의 항해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유의지  (0) 2016.05.28
근황정리  (0) 2016.03.03
우연히 길을 걷다  (0) 2015.11.23
적응  (0) 2015.10.19
잘한 생각  (0) 2015.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