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가면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나" - 주문진 여행 20160701~02

주문진으로

​A와 여행을 떠났다. 갑작스럽게 그렇게 됐다. 사실 A랑은 여행을 같이 갈 친분은 아니긴 했다. A가 조금 망설이긴 했다. 혼자 떠나고 싶은 생각 반. 출발 전에도 제가 좀 많이 팅기긴 했지요라고 하길래. 나는 뭐 어쨌든 이걸 계기로 조금 더 친해 질 수 있을테니까. 혼자 가게 두는 것도 뭔가 좀 아닌 것 같고 나도 어쩐지 같이 가야 할 것 같더라고. 

갑자기 결정난 여행이라 나도 부랴부랴 짐을 챙겼다. 사실 겨우 우산과 화장품만 챙기고 출발했다. 예비군 끝나자마자 집에가서 짐만 들고 나왔다. 목적지는 주문진이었다. 아니 근데 왜 주문진이야?라고 물었더니 딱히 별 뜻은 아니라 했다. 그냥 바다가 좀 보고 싶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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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비옴

비가 정말 많이 왔다. 이거 제대로 갈 수 있을까? 아무 사고 없이 가는 것 자체가 일이었다. 근데 오히려 비가 좀 왔으면 했다. 대화에 더 집중하고 이야기를 더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A는 독특한 음악들을 들었다. 영국에 있을 때 자주 들었던 음악들이라고 했다. 그게 영국에 있을 때는 와닿지가 않았는데 이상하게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는 이 음악들을 찾게 된다고 했다. 나도 도통 모를 음악들이었지만 열심히 귀담아 들어보았다. 트랜스 음악들. 최면으로 빠지게 하던가. 뭔가 깊은 내면의 소리들을 들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노래들이다. 나는 한스 짐머의 곡들도 추천해 주었고, 나름 괜찮은 것 같다고 했다.

주문진​

막상 주문진에 도착해서 회 한사라 시켜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사실 쉬운 이야기들은 아니었다. 그래도 A는 뭔가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이 나아지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도 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나도 굉장히 큰 충격을 받긴 했다. 우리가 정말 살아가면서 많은 생각들을 해야하는 주제들이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듣고나니. 휴. 하고 한숨이 먼저 나왔다. 

술잔을 비우고 나서야 입이 떨어졌다. 상대가 진심으로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에 나는 쓴소리도 스스럼 없이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이해해 달라 했다. 그리고 따뜻한 이야기를 못해줄 것 같아서 먼저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그냥 최악의 경우를 이야기 해주고 싶은거야. 나도 사탕발린 소리를 하고 싶은데 그러면 내 진심이 아니라서 영혼이 없는 조언이라서 그게 안되. 그래서 많은 사람들과 멀어지기도 했고 말이야. 너무 냉정하게 이야기 하니까. 근데 왜냐면 그게 지나치게 솔직해서 그래. 결국 그걸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만이 내 옆에 남더라구. 나도 이런 나를 알아. 그런데 나는 이걸 바꾸려고 하지 않아. 쉽게 말해 타협하지 않는다는 소리지. 난 최소한 거짓말은 하기 싫어. 대신에 그냥 솔직하게 터놓고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싸우는걸 두려워하지마. 싸우는 것은 협상하고 있는 중이란 뜻이니까. 안싸우면 그게 더 문제야. 가치관 다른 사람들이 만나는데 그렇게 잘 맞을리가 없어. 그냥 넷 중에 하나야 자신 쪽에 맞추던지, 상대 쪽에 맞추던지 아니면 서로의 중간으로 맞추던지, 그것도 다 여의치 않으면 둘다 맞추지 말고 그 문제는 건드리지 않기로 할지. 그냥 그걸 정하면 되. 감정 다 배제하고 일단 문제만 바라 봐. 기분이 나쁜 것과 문제들은 구분해야해. 감정을 회복하는 문제는 또 다른 문제야. 그래야 잘 해결할 수 있어. 감정에 빠져있지 말고, 결국엔 이게 다 문제해결 능력을 요하는 것들이야. 니가 포기하고 그만둔 것들을 잘 떠올려봐 사실은 그것들이 얼마나 성공에 가까웠는지는 아니? 이렇게 말하는 내가 필요한 때가 있을거야."

A는 속도 없이 그게 더 좋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고 했다. 

"그럼 이제부터 하는 이야기 잘 들어봐."

거짓말처럼 맑은 날씨

다음날은 정말 거짓말 처럼 하늘이 파랬다. 물론 일기예보에도 오늘 하루만 맑은 날이고 나머지는 전부다 비가 온다고 했었다. 어쩌면 우리가 정말로 운이 좋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루종일 드라이브를 즐겼다. DMZ에 가보고 싶다해서 고성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너무 파란 바다가 있어서 잠시 차를 멈춰세웠다. 조용하고 사람도 별로 없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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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한 어린아이가 물에 뛰어드는 장면이 너무 멋진 것 같아서 찍어보았다. 참 나도 어렸을 때 저렇게 물놀이 하는 것들을 좋아했었다. 칭따오 맥주 한캔을 먹으면서 바닷물에 발만 담궈 보았다. A는 이어폰을 꽂고 그냥 바다를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뭐라 말을 해야할까 음료수나 한잔하자고 해야할까 하다가 그냥 두었다. 딱히 말을 이어나가기 보다는 이런 공백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이것저것 정리할 것들이 많아보였다. A는 몇 번이나 지금 이 해변가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어보곤 했다. 마차진. 마차진 해수욕장이야. 기억해둬. 다음에 꼭 다시 오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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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통일 전망대

끝까지 한번 가보고 싶다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갈 수 없는 곳 까지 가봤다. 여기가 우리가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으로는 마지막인 곳이야. 통일 전망대에 데려갔다. 신분증 검사를 하고, 차량도 검문을 하느라 굉장히 절차가 복잡했다. 예전에 친구와 함께 5년 전쯤에 한번 와본 곳이었는데 다시 오게 될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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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전망대에 가려면 내국인들은 간단한 안보교육을 들은 뒤에야 들어갈 수 있다. 외국인들은 들을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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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다시 20분 정도 가면 이제 통일 전망대가 나온다. 정말 하늘이 맑다. 이런날 멀리 금강산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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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보이는 땅이 북녘땅이다. 10시 방향으로는 갈 수 없는 금강산이 있고, 1시 방향으로는 할아버지의 고향인 함경남도 북청이 위치해 있다.

여기가 대한민국에서 더이상 북쪽으로는 갈 수 없는 한계이다. 언젠가는 이 한계를 넘어서도 갈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A가 한참이나 탁 트인 DMZ를 바라봤다. 한시간 넘게 아무 말이 없었다. 그냥 여기 와보고 싶었다라고 했다. 원래는 오늘. A는 말끝을 흐렸다. 사실은 원래대로라면 지금 우리가 여기 있으면 안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여기에 와 있었다. 나도 마음이 너무 무거워져있었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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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모험의 끝

이제 서울로 출발했다. A는 생각이 많아보였다. 쉽게 말을 걸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출발 전보다는 나아보였다. 대관령에서 소고기를 사주었다. 그래도 이틀 동안 많이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근데 생각해보니 정작 도움을 받은건 A가 아니라 나 같은데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정리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몰랐던 것들도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많은 이야기들을 더 해주고 싶었지만 그게 또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몰라서 이야기를 많이 아껴두었다. 지독히도 비가 많이 내렸는데 돌아올 때는 거짓말처럼 개어있었다. 많이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