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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영화] 위플래쉬 - 천재를 갈망하는 광기의 가르침

스타(star) 2015. 3. 24. 04:50

천재는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강한 포텐셜과 열망을 가진자가 매섭고 집요한 지휘자를 만나면 어떤 오묘한 작품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말해주는 영화이다. 사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이걸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솔직히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스스로를 넘어서지 못하는구나 하는 느낌이다. 더러는 그 한계를 깨트리는 학생들도 존재하고 더러는 그 한계를 인정하고 포기하는 학생들도 존재했다. 위플래쉬는 지독한 영화이다. 무엇인가를 얻으려면 많은 것을 잃는다. 그것을 도와주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이다.



강한 긍정자는 선생이 되어라 

사람들 중에는 긍정적인 사고가 넘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누군가를 가르치는데 좋다. 사람이 변화하는 것을 보는 것은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절대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선생으로써 일차적인 자질이 부족하다 할 수 있다긍정적인 믿음 없이는 무엇인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 둘씩 자신만의 권법을 완성한 제자들이 강호를 활보하는 것을 봤을 때의 희열감은 선생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이는 내 권법이 세상에 통한다는 것을 느끼게 하기때문일 것이다. 플레처 교수는 그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 같다.



플레처 교수의 교수법

다소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잇는 플레처 교수의 교수법의 목적은 천재들의 잠재성을 이끌어 내려던 것이다. 사람을 극한까지 몰아부쳤을 때 그것을 뛰어 넘는 사람의 모습은 어떠한가. 사람은 95% 쯤에서 박수를 보내기 시작한다. 그만하면 충분하다는 뜻이다. 98%가 넘어가기 시작하면 경외감을 느낀다. 바로 이 지점이 무엇인가 "대단하다" 라고 말하는 지점이다. 그 흔히 느끼는 98%이상의 선을 넘는 것은 혼자만의 힘으로 넘어온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교수법이 가져다주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광기를 머금은 채,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되었을 때, 무수히 많은 희생자가 생기고 댓가를 치러야 했다. 과연 그런식의 방법이 장기간의 인생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들었다. 나 역시 그런 가르침과 학습을 통해서 내가 얻은 것은 분명 있었지만, 그것을 어떻게 이용해야하는지는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 같다. 자신을 마주보는데 수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코칭

앞에서 끌어주는 사람, 뒤에서 밀어주는 사람 옆에서 부축해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런 역할을 하는 자들은 누군가를 가르치고 있는 것의 범위를 넘어서야 한다. 코칭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이곳에서는 학생으로부터 배우고 자신의 한계를 시험한다. 플레처 교수는 자신의 선을 넘었다. 교수직을 잃으면서 까지 학생의 잠재력을 이끌어 냈다. 



그만하면 좋다의 위험

대립과 격려, 칭찬과 질타, 무시와 반전이 들어간다. 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스승과 제자의 훈훈함 따윈 없었다. 루이 암스트롱이나 찰리파커 같은 사람이 나오길 기대한다는 플레처 교수의 염원은 선생이란 직업을 가진 모든 사람들의 바람과도 같다. 더러는 나를 넘어서는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한다. 대리만족을 하기에는 내가 더 성장해야할 것 같은데 이미 나는 그들과 목표가 다르다. 


언젠가부터 칭찬은 후해야할지 인색해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이 된다. 그만하면 좋다(Good Job)이라는 말은 아쉬운 당근인 것 같았다. 나는 이 말을 듣고나면 갑자기 멈추어 버린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은 오히려 결핍이었다. 무엇인가 조금 모자라다는 느낌이 나를 저 멀리까지 데려다 주었다. 만약 만족하면서 사는 것이 익숙해졌다면 나는 더 큰 노력을 안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