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월 중순인데 돌이켜 보니 위기라고 할 것들이 뭐 있었나 싶기도 하고,
아직 망하지 않고 여전히 글을 쓰고 있으니 생각보다도 살만한가 봄.
살이 조금 찌고, 한결 편해졌다는 생각이 드는걸 보니 벌써 이 생활도 적응해버린 듯.
컨디션 안 좋을 때는 진검승부를 피해야하는데,
하긴 내 상대들이 그런 틈을 주기나 하려나.
같이 라인에 선 친구들은 어디 출신야구선수들인지 던져도 참 잘 던진다.
뭔가 새로운 도전들을 더 해야할 시기라는 것을 알긴 하는데
항상 이핑계 저핑계 대면서 또 안주하려는 마음을 경계한다.
2.
남들이 하라는거 해본적이 없어서 그래서 난 항상 1등임.
3.
좋은 근무 조건과 환경에 젖은 상태로 머물 생각이었다면, 나 역시 이런 도전들을 하지 않았을거다. 왜 이리 사서 고생을 하러 나왔는가? 그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생각해 보니 하나씩 기억나더라. 내가 꿈꾸는 환경과 만들고 싶은 조직이 세상에 존재했으면 했다. 나와 같은 유형의 친구들의 창조력과 열정을 불태울 만한 곳이 세상에는 너무 부족해보였다. 모두가 다 똑같이 일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한탄과 한숨을 쉬는 모습과 꼬라지를 도저히 볼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부터라도 한그루의 <나무>를 심어보겠다는 생각이었다. 틈만 나면 직원들에게, 동료들에게 3년 뒤에는 당신이 꿈꾸는 우리의 회사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하고 심심치 않게 이야기하곤 했다. 분명, 지금은 내 실력과 역량이 부족하여 회사라는 울타리를 보여주기에는 당장은 모자랄지 모르겠으나, 우보천리의 마음으로 걸어가다 보면,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나와 직원들의 근무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1층에 까페테리아라 딸린 전원식 빌딩, 모던한 공간, 자유롭고 창발적인 형태의 가구 배치, 재택근무, 주 4일 근무, 하루 7시간 근무, 최고의 복지와 최고의 연봉 조건, 하지만, 열정을 가지고 일하는 직원들과 그에 따르는 보상책. 세상에 없던 또 다른 가치. 그리고, 이렇게 공부하고 이렇게 일해도, 세상에 필요한 가치를 만들어 내기에는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생각한 길과 비전이 세상에 통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무엇을 생산해 내던지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은 세상에 없던 것이어야 한다. 무엇을 생산해 내던지 남들과 비교하지는 않고 싶다. 그것이 어떤 재미와 지식과 서비스를 제공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가장 나다운 방법, 가장 우리다운 방법으로 만들어 보려고 한다.
4.
불과 1년 전에 내가 받은 질문 중에 하나가 가지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이었다. 한참을 망설인 끝에 BMW 3시리즈를 가지고 싶다고 소박하게 이야기를 했는데, 그 이후로 내내 그 것이 마음에 걸렸다. 내 꿈이 고작 이거밖에 안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 좁게도 살았던 것 같다. 그 후로 1년 뒤에 내 꿈은 그 동안 멈춰둔 성장 만큼이나 무럭무럭 자라나 있었다. 가지고 싶은거요? 아트유는 ICBM이 갖고 싶다고 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감이 오지 않았다. 꿈을 꾸기가 두려웠던 것이다.
어느 날. 문득. 우주탐사선 하나를 쏘아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주탐사선을 만들자. 그래. 정말로 나의 별을 찾을 수 있도록. 이 우주에 인류의 흔적하나 정도는 남기고 싶었나 보다. 수 억년을 떠돌아 우주 미아가 되고, 이 넓은 우주 속에 평생을 표류하더라도, 언제나 우주는 우리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상상을 준다. 대한민국의 꿈은 절대 작지 않다.